아직도 눈에는 눈
아직도 눈에는 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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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초등학생티가 난다. 귀엽다는 뜻이다. 참 귀엽긴 하지만 작은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여러 학교에서 모이다 보니 잘 모르는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작은 장난이 어느새 폭력이 되기도 한다.

피해가 크거나 고의성이 있는 등 확실한 학교폭력 사안이면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과 협력하여 절차대로 일을 진행하면 된다. 문제는 학교폭력 처리 절차를 거치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폭력 처리 절차는 말 그대로 학교폭력과 관련된 문제를 진행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폭력은 무척 자세하게 만들어진 매뉴얼이 있다. 학생의 신고 및 학교폭력 인지부터 시작해서 보고 및 학생들에 대한 긴급조치, 사안 조사, 전담기구 심의, 결과 보고와 조치이행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진행되는 일들과 해야 하는 것들이 상세한 매뉴얼로 만들어져 있다.

필자 생각에는 이런 매뉴얼에 따라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는 것은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을 받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아이들은 절차를 통해 상대방이 얼마나 더 잘못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덜 잘못했는지를 최대한 부각하려고 한다. 절차적으로는 공정할지 모르겠지만 그 절차를 거친다고 아이들의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고의성이나 심각성 등을 고려하여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할 것 같은 사안은 최대한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학교폭력 처리 시스템이 아직은 응보적 정의 시스템에 많이 기대는 것 같다. 응보적 정의는 쉽게 말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고 강제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에 맞는 처벌이나 고통을 줌으로써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응보적 정의에 따르면 다른 친구에게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은 그에 맞는 수준의 고통이나 처벌을 줌으로써 피해자가 받은 고통의 저울추를 평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응보적 정의에서는 누가 가해자인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가해자에게 주어지는 고통의 무게가 피해자가 받은 고통의 무게를 줄여주거나 없애줄 수 있을까? 필자는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 피해자가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응보적 정의와 달리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회복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와 영향을 직시하고 그 피해를 자기 스스로 책임지게 된다. 그리고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당사자와 공동체 모두가 노력한다. 즉 가해자의 자발적 책임과 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피해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서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진정한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학교폭력 심의의원회에서는 대체로 아이들이 잘못한 정도에 따라 처벌을 부과하게 된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해서는 서면사과, 접촉이나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교내 봉사, 특별교육 또는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등의 조치가 부과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아쉬운 점은 이 아이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자발적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단계가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은 처벌을 받고 더 큰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일종의 강제적인 관계회복을 지시받게 되는 셈이다.

다행인 것은 울산시교육청에서도 학교폭력 학생들의 관계회복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학교폭력 가·피해 학생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학교폭력 화해분쟁조정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측 학생들이 동의하는 경우 학교에서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를 보면 아직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각이 중심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더딘 걸음이지만 계속 나아가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초반에 삐거덕거리던 우리 반 아이들도 어느새 조금씩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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