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분노의 질주:라이드 오어 다이’ 그들은 그렇게 친구가 되어간다
영화 ‘분노의 질주:라이드 오어 다이’ 그들은 그렇게 친구가 되어간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0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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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시리즈의 재미는 시원한 자동차 액션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점점 확장되어 가는 인물들 간의 우정도 한몫을 한다. 그러니까 처음엔 주인공 돔(빈 디젤)과 적이었던 이들이 회를 거듭하면서 그와 친구가 되어 새로운 적에 함께 맞서 싸우게 된다는 설정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생과 사를 넘나드는 거친 질주 속에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 돔과 영혼의 단짝인 브라이언(폴 워커)도 처음엔 적이었는데 심지어 그는 불법을 일삼는 폭주족 돔 일당을 잡기 위해 잠입한 경찰이었다. 하지만 돔과 친해지면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그의 도주를 도와주게 됐고, 그 일로 그는 경찰 배지까지 내려놓게 된다. 비슷한 사례로 정부 비밀 요원인 홉스(드웨인 존슨)도 처음엔 돔을 잡으려 했지만 미친 레이싱 실력을 지닌 돔의 매력에 끌려 역시나 친구가 된다. 급기야 그는 시리즈 6편 <분노의 질주:더 맥시멈>에선 전세계에 걸쳐 군 호송 차량을 습격하며 범죄를 일삼는 레이싱팀을 소탕하기 위해 돔과 그의 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어디 브라이언과 홉스뿐인가. 나름 굵직한 캐릭터로는 쇼(제이슨 스타뎀)도 있는데 그는 처음엔 동생(루크 에반스)의 복수를 위해 돔과 그의 팀을 공격하는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러다 시리즈 8편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에선 갑자기 변절해 악당 사이퍼(샤를리즈 테론)와 한팀이 되어버린 돔에 맞서기 위해 남겨진 그의 팀과 힘을 합치게 된다.

이 무슨 막장 스토리인가 싶겠지만 <분노의 질주> 마니아들은 다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을까. 어차피 물리학을 거스르는 말도 안 되는 자동차 액션이지만 소싯적 쌈박질을 통해 오히려 친해져 친구가 된 경험만큼은 다들 하나씩 갖고 있거나 알고 있기에. 그렇다. <분노의 질주>시리즈에서 오히려 현실적인 건 확장되어 가는 우정이 아닐까. 그렇게 그들은 분노의 질주를 통해 친구가 되어 갔다.

하, 근데 최근에 개봉한 시리즈 10편 <분노의 질주:라이드 오어 다이>에선 돔의 숨겨진 아이를 인질로 삼아 한때 돔을 조종했을 정도로 악질이어서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이퍼까지 한팀이 되더라. 단테(제이슨 모모아)라는 더 큰 악에 맞서기 위해. 아니, 시리즈 통틀어 지금껏 돔과 싸운 뒤 결국엔 친구가 됐던 이들이 모두 등장해 하나씩 하나씩 한팀을 이뤄가는데 마치 마블의 <어벤져스>시리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번 편은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처럼 나름 타노스(조슈 브롤린)급의 악당인 단테에게 돔과 그의 팀이 당하는 모습이 스크린 가득히 그려진다. 해서 2025년 개봉 예정인 시리즈 11편은 <어벤져스:엔드 게임>처럼 같은 팀이 된 그들이 힘을 합쳐 단테를 향해 통쾌한 복수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처음부터 계획됐던 건 아니었을 거다. 그냥 하다 보니 단순한 자동차 액션영화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고 싶었던 것 같고, 그게 바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어가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재미와 감동을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언제부턴가 영화상에서 불분명해진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의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가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게 된 건 사실 일대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서부영화든 홍콩무술영화든, 혹은 공상과학영화든 악당은 끝까지 악당으로 남았던 게 일종의 법칙이었지만 밀레니엄 전후로 히어로 무비들을 중심으로 악당이 선한 일을 하는 반란이 번지기 시작했다. 바로 영웅 같지 않은데 영웅 짓을 하는 ‘안티히어로(Antihero)’가 등장한 것. 또 가끔은 영웅이 타락하기도 하면서 선과 악의 경계는 점점 무너져 갔다. 아니, 솔직히 이제 선과 악의 이분법이 명확한 영화는 지루하고 꼰대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재미는 둘째치고 신선함이 떨어진다. <어벤져스>시리즈도 재미를 넘어 신선한 매력을 발산했던 건 나름 신념에 찬 타노스라는 악당 때문이 아니던가. 그는 넘치는 생명체들로 황폐해지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신분이나 가진 것을 막론하고 무작위로 우주 생명체 절반을 없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분노의 질주>시리즈가 20년 넘게 흥행 질주를 달리게 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선과 악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신선함이 크지 않을까 싶다. 아니 처음엔 그저 폭주족에 불과했던 돔은 이제 가족과도 같은 자신의 팀과 함께 지구평화를 수호하는 비정규직 언더 히어로들이 됐다. 그 변화가 어색하지 않은 건, 그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우주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현실에서 우리도 왔다 갔다 하니까.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 사이를. 또 돔과 그의 팀처럼 가끔은 삐딱해도 폼나게. 2023년 5월 17일 개봉. 러닝타임 141분.

아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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