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월산 신흥사, 천년 고찰 호국 도량
함월산 신흥사, 천년 고찰 호국 도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5.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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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부처님 오신 날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BC 246년에 탄생했으니 2천269년 전의 일이다. 농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한 절집은 신흥사였다. 내게도 동네 아이들과 신흥사를 오가면서 물포구 열매나 산밤을 따 먹거나, 4월 초파일이면 가끔씩 가서 절밥을 얻어먹었던 추억의 공간이다. 자랄 때 소풍도 갔고, 교사 때는 아이들 소풍을 인솔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도 불전 사물이 같이 있었을 것이나 아무 색을 칠하지 않았던 목어가 유독 뇌리에 남아 있다.

근동 사람들의 신흥사 추억도 많을 것이다. 옛날에는 산불이 자주 났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땔감을 해대서 거의 민둥산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절갓까지 내려가서 나무를 해다가 날랐다. 그 시절에도 절 가까이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들이 욕심났다. 이걸 베어다 제재소에 갖다 주거나 장작을 패서 팔면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결사코 지켜내려 했지만 도벌꾼들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신흥사의 산신각과 낙서암 사이로 가파르게 난 옛길이 있다. ‘신흥산’이라고도 불리는 ‘함월산’ 봉우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삼태지맥 능선을 만난다. 정상부인 ‘파군산’ 아래에는 우리 집이 이사해 살았던 제내마을 동산이 있다. 그곳에는 옛날의 마을 어른들 묘소가 많이 있는데, 나의 부모님도 그 옆에 이웃하여 계신다. 근처에 있는 산지습지인 ‘바깥벌새미’에 보리수나무 군락지가 있다. 나무하거나 산나물 뜯으러 다니다가 목을 축이던 ‘안벌새미’는 수명을 다했다.

사적비가 전하는 신흥사의 유래는 자못 흥미롭다. 신흥사의 창건 연도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지만 명랑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점과 당시에는 ‘건흥사’라 불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명랑은 문무왕 11년(671)에 경주 낭산에 밀단을 마련하고 문두루비법 법회를 열어 서해를 건너오던 당나라 병선을 침몰시켰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칠 때 비법을 이용하였듯이 불교와 밀교의 융합으로 나라를 구한 법회는 더욱 융성해졌다.

계림 수호를 위해 함월 산중에도 절을 세웠다. 이곳에 불상이 모셔지고, 많은 승려들이 상주하며 도력을 길러 비법 연마에 들어갔다. 문무왕 16년(676)에 사찰의 서북간 정상에 만리성을 쌓아 왕경 방어선을 구축했던 기록이 전해지니 신흥사는 창건 당시부터 호국 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긴 세월이 흘러 임진왜란을 당하자 신흥사 승려 지운은 사찰 양식 삼백여 석을 기박산성 의병들에게 제공하였다. 백여 명의 신흥사 승병도 의병들과 합세하여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왜란이 끝나고 1646년에 경상좌병영의 재산으로 중건하면서 ‘신흥사’라 편액을 하였다. 병마절도사 이상국이 현판 글씨를 남긴 ‘신성루’는 승병들의 지휘소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절의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제작 3년만인 1749년에 해로를 거쳐 봉안했던 기록을 근거로 국가 보물로 지정(2021)되었다. 이후 1871년, 신흥사에 진을 설치하고 성을 고쳐 쌓은 후 ‘신흥산성도’를 제작하였다. 이로 미루어 경상좌병영이 신흥사를 호국 도량으로 활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신흥사는 50여년 전부터 크게 중창하였다. 대웅전을 새로 지으면서 원래의 대웅전을 왼쪽으로 옮겼다. 수많은 유압잭을 건물 하부에 설치하고, 레일을 이용해 건물 전체를 들어 올려 하루에 몇 ㎝씩 1년여에 걸쳐 이동시킨 것이다. 그만큼 귀중하게 예우한 건물이 지금의 ‘응진전’이다. 응진전은 단청 양식의 중요한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중앙 반자에 채화된 용 그림은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어서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었다.

신흥사가 있는 곳은 강동 대안이다. ‘대안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2천년 전에 지어졌는데, 초기 신라였던 사로국이 창원 방면 포상팔국의 공격을 제압하고 크게 편안해졌다는 데서 유래한다. 고목인 회화나무도 절의 오랜 역사성을 증명하고 있다. 7세기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조에 들어 다시 주목받았던 호국 도량 신흥사는 이처럼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천년 고찰이다. 아울러 사람들의 본성을 일깨워주는 성스러운 공간이자 높은 품격을 갖춘 문화공간이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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