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읽는 국어 만들기 역사
대화로 읽는 국어 만들기 역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5.1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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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김민수 구술-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

2007년 한사람이 구술(口述)한 말들이 모여 올해 4월, 한 권 분량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평창올림픽 소식으로 떠들썩했던 2018년 2월 15일, 9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국어학 연구자로서 국어 정책 관련 분야에서 평생을 바친 약천(若泉) 김민수 선생. 그는 국어국문학회, 국어학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학교 문법 통일안(1963년)을 제정하는데 중추 역할을 했다.

그는 1945년 해방되던 해, 조선어학회 파견 강사로 한글 보급 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큰사전’ 편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55년부터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으면서 주로 해방 이후 국어 정립을 위한 학술 정책 활동에 매진했다.

‘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 이 책은 원저자로부터 채집한 말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대조하고 철저히 분류해서 만들어냈다. 여기에 참여한 학자들은 ‘제자 혹은 제자의 제자들’(최경봉, 김양진, 이상혁, 이봉원, 오새내)이다.

한 국어학자가 남긴 삶과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아주 분명하다. 생전 국어가 단순히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소비되는 일에 극구 반대했던 이유 있는 항변과 근현대로 이어지는 국어학 전개 맥락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중후반까지 국어 정립 활동 시기로 보는 데 이때 국어 연구, 정책 활동 기록은 연대기 순만 있을 뿐 교육 및 어문 환경에 관련된 활동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든다. 하나는 당시 지나친 정치세력 개입, 또 하나는 철자법, 국어순화, 표준어 등과 관련된 논쟁과 대립이 극심해서였다.

하지만 당사자 구술 혹은 진술에만 의지해 사실로 장담하는 일은 어려움이 많았다. 국사편찬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진 1차 증언 내용(2007년)을 놓고 김민수 선생이 돌아가신 후 꼼꼼하게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남긴 증언에 관한 면밀한 검토, 객관성 있는 자료를 뒤져보면서 오류를 줄여가는 데 중점을 뒀다. 즉 증언이 지닌 의미를 충실히 파악해 질문을 만들고 참여한 학자들 견해를 밝히는 데 집중했다.

선생이 증언한 여러 말씀 가운데 뒷골이 서늘해지는 대목이 오래 남는다. 일제 지배를 받았던 민족이 일본어를 이해한 비율을 직접 조사한 바 있었다. 특히 타이완 예를 든 부분. 일제 말기 타이완 국민 85%가 일본어를 완전히 해득(解得)하고 있었다는 조사. 나머지 15%는 오지(奧地)에 사는 노동자나 농민이라 보면 사실상 거의 다 일본어를 쓰고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했다는 의미다. 이런 결과를 말하면서 우리나라도 해방이 20년 정도 늦어졌으면 90% 이상이 일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납득(納得)할 만한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일본 식민지 언어 정책은 아주 치밀하게 진행됐다. 애초부터 완전동화(完全同化)를 꾸몄다. ‘조선 민족은 그냥 육체만 남기고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계략.

이 책은 물 흐르듯 읽되 ‘그때’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조선어학회 활동, 일제 말 조선인 삶과 조선어, 마침내 국어가 된 조선어, 큰사전 완간, 남북 언어 통일과 세계화 문제 등에 대해서 새겨두어야 할 내용이 촘촘하기 때문이다.

이 책 저자 중 한 명인 원광대학교 최경봉 교수가 한 매체(오마이뉴스, 2018. 2. 23)에 남긴 글이 눈에 밟힌다. 그간 이룬 업적은 산처럼 높지만, 선생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리는 기사는 짧은 부고 하나뿐이라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은 기고문, ‘우리가 한 국어학자의 삶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우리말 글과 관련한 많은 것들이 선생이 이룬 학문적 성과에 실천에 기대어 시작되었고 존속되고 있다. 우리말 공동체가 지속되는 한, 남북 언어 통합을 위한 연구와 실천은 지속되어야 하고, 재외동포와 세계인을 위한 우리말 보급은 더 확대되어야 하고, 우리말 사전은 더 풍부하고 정교해져야 하고, 우리말의 원리와 작용은 더 정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선생의 삶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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