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머로우 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영화 ‘투머로우 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5.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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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재밌게 봤던 <백 투 더 퓨쳐>시리즈 같은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시간여행’은 현실성 따윈 전혀 없는 그저 영화 같은 일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보다 더 현실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되었는데 난 지금 시간여행이 완전 영화 같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백 투 더 퓨쳐>에서의 주인공 마티(마이클 J. 폭스)와 브라운(크리스토퍼 로이드) 박사처럼 제대로 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뒤늦게 알게 된 시간의 특성으로 인해 가능성만큼은 인정하고 있는 것. 그렇다. 내가 그렇게 바뀌게 된 건 바로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 때문이다.

대략 서른 즈음이었다. 문과 출신이라 팔자에는 없을 줄 알았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인터넷을 통해 나름 열심히 들여다보게 됐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속도와 질량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 다시 말해 속도가 높을수록, 혹은 질량(중력)이 클수록 시간은 느리게 간다고 한다. 이런 상대성 이론이 실생활에 적용된 게 바로 GPS(내비게이션). 인공위성과 지표면은 중력 차이로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상대성이론으로 그 차이를 보정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잘못된 위치 정보를 받는다고 한다. 아니, 절대적인 줄만 알았던 시간(時間)이 다르게 흐르다니! 그랬다. 막 서른을 넘긴 남자는 그제야 ‘일상’이라는 매트릭스(Matrix)에서 조금 벗어나게 됐다. 혹은 점점 엉뚱한 인간이 되어 갔다.

그랬거나 말거나 그 일로 인해 그후 10여년 뒤 보게 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내겐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렸다. 남들이 경이로움과 재미, 혹은 감동에 젖어 있을 때 상대성 이론을 조금 알고 있었던 난 영화 속 장면들이 모조리 현실로 여겨졌던 것. 특히 황폐해진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첫 번째로 도달한 밀러 행성에서 주인공들이 겪은 일에선 속으로 “그래, 저거야!”라고 외쳤다. 밀러 행성 근처에는 엄청난 중력의 거대 블랙홀이 있었던 탓에 쿠퍼(매튜 맥커너히)와 브랜드(앤 해서웨이)가 3시간 정도의 행성탐험을 마치고 우주선으로 복귀하자 우주선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로밀리(데이빗 기아시)는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버린 것. 지구에서의 1시간이 밀러 행성에선 7년과 같았던 것이다. “저런 게 어딨어?”가 아니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여기서 잠깐! 쿠퍼와 브랜드가 셔틀을 타고 밀러 행성을 갔다 왔더니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잖아요? 그렇다면 이게 바로 ‘시간여행’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들이 탄 셔틀은 ‘타임머신’이고.

하지만 더욱 기가 막힌 건 일상에서도 우리는 늘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 그 사물에 반사되어 나오는 가시광선을 보는 것으로 거리에 따라 시간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어 모조리 과거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가령 1m 앞에서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건 그 사람의 3억분의 1초 전의 모습이고, 1억 4천960만km 떨어진 현재의 태양은 사실 8분 19초 전의 모습이라고 한다. 또 태양과 가장 가까운 별(항성)인 알파센타우리 프록시마는 4.3년 전의 모습이다.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다보니 최근에 본 <투모로우 워>라는 영화도 내겐 조금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30년 뒤의 미래인들이 갑자기 2022년 12월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현재에 나타나는데 그들이 사는 세상엔 ‘화이트 스파이크’라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해 인류를 절멸시키려한다며 현재인들이 미래로 와서 같이 싸워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결국 현재인들은 후손들을 위해 ‘점프링크’라는 일종의 타임머신을 통해 30년 뒤의 지구로 가서 싸우게 되는데 재밌게 보면서도 “저런 시간여행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잖아요. 현실적으로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데 뭔들 안 될까.

이쯤에서 실토하자면 이제 내게 시간은 더 이상 시간(時間)이 아니다. 아니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전 우주적으로 봤을 때 그건 그냥 ‘물질들이 각자 변해가는 속도’일 뿐. 그래서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거고, 이 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는 ‘롤렉스’도 ‘파텍필립’도 아닌 ‘원자시계(原子時計)’인 것이다.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도 이런 책을 썼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읽었냐구요? “....”

지표면에 딱 붙어살면서 이런 생각들이 무슨 헛짓이냐 싶으시겠지만 이러고 사는 이유에 대해선 배우 이지아가 한 예능 프로에서 아주 잘 설명하더라.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자신의 매니저로부터 “언니, 현생이 바빠”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그러자 이지아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약간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생각하고 그러면 여기서 좀 벗어난 느낌을 받는 거 같아. 그리고 내가 지금 이거 갖고 오늘 아등바등한 게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 거시 세계를 생각하면 이 미시 세계는 말이야. 너무 하찮다구.” 하긴, 우주에서 보면 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2021년 7월 2일 개봉. 러닝타임 138분.

아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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