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送迎)·색성(色聲)의 달 5월
송영(送迎)·색성(色聲)의 달 5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5.0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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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보내며 맞이하는 송영(送迎)의 달이다. 열두 달 중에 유독 5월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5월의 울산에는 대표적 송별과 환영이 돋보이게 교차하는 달이기 때문에 선택했다.

까마귀는 날아가고 백로는 내려앉는다. 개운한 듯 아쉬운 송별과 울며 겨자 먹는듯한 환영은 떼까마귀와 백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떼까마귀는 울산에서 겨울을 보내는 묵객(墨客)이며, 백로는 여름을 보내는 설객(雪客)이다. 겨울을 보낸 묵객 일행은 이미 사월에 고향의 알 낳을 자리를 찾아 북으로 떠났다.

그런데 오월의 첫날, 늙은 떼까마귀 한 마리가 어설픈 날갯짓으로 허둥대며 잠자리에서 늦게 날았다. 내 쪽으로 점차 가까이 날아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이를 의미 있게 쳐다본 나는 바로 깨달았다. 내 머리 위에는 전깃줄이 있었기 때문이다. 깃은 빠져 엉성했다. 몰골은 초췌했다. 일행과 함께 떠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득 안쓰럽게 느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울산 땅에 뼈를 묻을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북녘을 바라보는 떼까마귀의 초점은 이미 흐려져 있었다. 두려움 탓인지 고개를 연신 사방으로 돌리며 두리번거렸다. 본연의 일 조사(調査)를 위해 다시 고개를 돌린 나의 시선 너머로 보이는 태화강물은 이날 따라 유난히 푸르고 맑았다. 떠난 떼까마귀 일행이 아쉬움에 흘린 눈물이 알알이 진주가 되어 태화강에 보태졌기 때문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사월과 다르게 오월은 백로의 마릿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작년과 비교해 보면 증가 속도가 늦은 편이다. 울산의 삼호대숲이 백로류의 알 낳을 자리라는 사실은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다. 백로는 오랫동안 반복된 세월의 경험에서 삼호대숲이 최고의 환경임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의 포근하고 안전하며 넓은 삼호대숲 가슴에 백로는 박차고 벗어난 알껍데기를 떨어뜨린 대숲을 고향이라고 여긴다.

그렇다. 삼호대숲이 늘 푸른 것은 연년이 보내고 맞이하는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멍으로 쌓인 늘 푸르름이다. 올해도 삼호대숲은 떼까마귀와 백로를 한시적으로 맡겨두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 보내고 맞이하는 의식은 대숲의 흔들림에서 느낄 수 있다. 오고 갈 때마다 대숲은 딸을 시집보내는 어버이 마음 같아서 작은 바람에도 여윈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일렁거린다.

오월은 또 색성(色聲)의 달이다. 오월의 자연은 하루하루가 잔치라도 벌이는 듯 색이 다채롭고 소리가 풍성하다. 내 눈에는 무지개 일곱 빛깔 잡화가 활짝 피고, 내 귀에는 천상의 뭇 풍악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를 빛깔과 소리의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색(色)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일곱 빛깔 무지갯빛이다. 색채, 모양, 상태는 눈에 보이는 현상(現象)이다. 아카시아, 찔레, 이팝, 불두화, 서리화, 양귀비, 박태기, 오동나무, 장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장엄한 색깔이다. 성(聲)은 왜가리, 까마귀, 까치, 찌르레기, 참새, 멧비둘기, 오목눈이, 직박구리, 박새, 소쩍새, 할미새, 꾀꼬리, 딱따구리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연의 소리다.

색성(色聲)은 곧 천색(千色)으로 피는 꽃의 정(靜)이며, 천성(千聲)으로 우는 새의 동(動)이다. 결국, 식물의 색과 동물의 소리는 모두 사랑의 색성이다. 온밤 내내 물장구를 치며 내리던 노란 송화(松花) 꽃비는 소리꾼 ‘곳고리’(꾀꼬리의 옛말)의 옷을 물들였다. 갈아입은 황의(黃衣)는 아침 햇살에 춘앵전(春鶯?) 의상으로 돋보였다. 그녀는 아카시아 흰 꽃송이가 풍기는 신비한 내음에 취했는지 횃대를 옮겨가며 몸을 숨겨 종일토록 서른두 가지 관음 소리로 울고 있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는 미묘하여 과거부터 현재까지 달마다, 계절마다 순환하며 디자인으로 장엄하고 있다. 이틀간의 세찬 꽃바람 비는 꽃 자국은 물론 오월의 어린이날도 앗아갔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푸른 벌판을 달리는 냇물도, 푸르름 속에 한껏 자라기를 바라는 일 년을 기다린 동심도 37.6mm의 강수량이 대신했다. 올해, 송영(送迎)·색성(色聲)의 길목 3일간은 줄곧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만 날개를 접은 철새가 되어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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