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과의 대화… 한지(韓紙) 上
큰스님과의 대화… 한지(韓紙) 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5.0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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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마지막 금요일 오후, 지난겨울 들렀던 통도사 경내 서운암 토굴로 발길을 옮겼다. 또 베어냈나? 토굴 앞 텃밭은 서너 달 사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수십 그루밖에 안 남았던 30년도 더 된 감나무가 그루터기마저 안 보이게 몽땅 자취를 감추고 만 것. 손님맞이 아랫집(게스트하우스) 앞 연못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 아래 온실 지붕마저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나?

토굴 주인 성파스님은 이날도 온화한 미소로 일행을 맞아주셨다. 백성스님(김성수 박사)을 따라 큰스님께 모처럼 엎드린 채 절을 올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에서였지만 큰스님은, 늘 그랬듯, 손사래부터 치셨다.

다과 대접을 신호로 말문이 열렸다. 강원도 원주시가 5월 5일 어린이날 ‘한지(韓紙) 패션쇼’를 연다는 소식부터 전해드렸다. 필자의 말을 큰스님이 받았다. “한지라면 원주를 빼놓을 수 없지만, 거기만은 아니지. 한지 인간문화재가 경남 고령에서도 한 명 나왔다 하고.” 백성스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울산 운흥사에 오래된 닥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해서 베지 말고 잘 보존하라고 일러두었지요.”

큰스님이 다시 말을 받았다. “신흥사, 월봉사하고 통도사 말사(末寺)인 고성 옥천사도 (불경 인쇄용) 한지를 많이 뜨던 사찰이었지.” 이번엔 ‘한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의 근황을 필자가 물었다. 즉답이 돌아왔다. “이배용 총장, 3년간 한지 연구와 자료 수집, 참 많이 했지.” 이배용 전 총장은 ‘불교사찰’과 ‘향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공이 큰 일등공신. 큰스님의 신임이 그래서 높다.

큰스님의 한지 이야기는 이때부터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출판물이 우리 한지야. 불란서(佛蘭西=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직지심경(直指心經=直指心體要節)’도 불국사 다보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도 재료는 모두 한지였지,” “서구(西歐=유럽)에서는 13세기 말에 종이가 처음 나와. 그 전엔 종이가 없었고. 그때 서구에서 종이로 만들었던 책이나 미술작품이 지금은 수명이 다 돼서 한꺼번에 수리해야 하는 시기가 닥쳤다고 해.”

큰스님의 말씀에 차츰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얼마 전만 해도 복원하는 종이로 일본 종이가 최고인 줄 알고 있었다는 거야.” “세계 종이 시장이 1년에 3조나 된다는데 대개 다 일본 종이였어.” 큰스님의 말을 간추리자면, 옛날과는 달리 이젠 일본 종이를 우리 한지가 거뜬히 누르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을 잇는다. “일본 종이, 중국 종이는 벌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는데 우리 한지는 아직 안 됐어. 빠져 있는 거라.” 한지의 유네스코 등재에 관심을 쏟게 된 까닭에 대한 설명인 셈이다.

서운암 토굴 앞 텃밭은 3년 전에도 엄청난 변화를 겪은 바 있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 연못과 온실 사이의 널찍한 텃밭이 특히 더 그랬다. 그 유명한 ‘서운암 단감’의 밑천이었던 30년생 감나무 수십 그루를 미련 없이 베내고 그 자리에 한지의 원료인 1~2년생 닥나무를 천 그루 넘게 심었던 것.

“2, 3년 전에 심어놓은 닥나무가 지금은 제법 쓸 만해. 그래도 한지로 뜰 생각은 없어.” 필자의 물음에 대한 큰스님의 답이다. 이번엔 옆자리의 김언배 명예교수(섬유디자인 전공)가 한마디 거든다. “그럼 왜 심었어요?” 큰스님이 답했다. “전국 사찰 중에서 한지를 제일 많이 떴던 통도사의 상징으로 남겨둘 생각이야.”

▶中으로 이어짐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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