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어’ Just do it
영화 ‘에어’ Just do it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2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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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NIKE)의 슬로건인 ‘Just do it’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의외로 조금 충격적이다. 나이키를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만든 초석이 된 그 말이 사실은 한 사형수의 입에서 시작됐기 때문. 1976년 게리 길모어는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사형집행 당일, 그는 총구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하라는 참관 목사의 말에 이런 말을 남긴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Let’s do it”

그러니까 사형집행을 시작하자는 것. 그의 마지막 이 말은 당시 뉴스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 그 소식을 들은 이들 중에는 나이키의 광고책임자인 댄 위든도 있었다. 댄은 그렇게 사형수 게리가 남긴 최후의 말에 영감을 얻어 ‘Just do it’이란 슬로건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도전이 본질인 스포츠 브랜드인 만큼 ‘그냥 그것을 해(Just do it)’라는 나이키의 슬로건은 얼핏 생각하면 꿈을 향해 도전하려는 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로 들렸겠지만 이처럼 그 시작점은 그런 희망적인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까 살인자이긴 하지만 게리는 사형을 당하는 그 순간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Let’s do it”이라 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이키의 정신인 ‘Just do it’은 희망찬 도전보다는 오히려 절망을 삼키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인 셈. 그리고 그 방법은 ‘그냥 하는 것’ 혹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80년대 초반, 아디다스(adidas)와 컨버스(CONVERSE)에 밀려 업계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던 나이키의 도약을 위해 새로운 광고 모델을 찾고 있던 스카우터 소니(맷 데이먼)도 당시 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본인은 이제 막 대학 농구팀에서 프로 무대로 옮기려는 ‘마이클 조던’ 선수에 꽂혀 있었지만 나이키의 창립자인 필 나이트(벤 애플렉)는 자사 제품 중 농구화에 대해선 유독 부정적이었기 때문. 그랬기 때문에 회사에서 지원하는 스카우트 비용도 소니가 원하는 금액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그 무렵, 나이키의 광고책임자인 댄 위든이 ‘Just do it’을 슬로건으로 처음 들고 나왔고,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의 유일한 희망이라 믿었던 소니는 자칫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를 광고모델로 스카웃하기 위해 ‘그냥’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미 아디다스와 컨버스도 마이클 조던을 차지하기 위해 스카우트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나이키의 실제 성공신화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에어>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앞뒤 따지지 않고 ‘그냥’ 그 일을 한다는 건,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그 일을 하는데 있어 “내가 왜?”라거나 “왜 하필 나지?”, 혹은 “어차피 결과는 뻔할 건데 왜?”라는 등등의 질문을 던질 수가 있기 때문. 어디 이것뿐인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설 수도 있고, 지레 겁을 먹고 울어버리거나 도망칠 수도 있다. 당연한 거다. 생각과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냥’ 그 일을 한다는 건 아주 용감한 행동으로 승화될 수 있다. 자신을 죽이게 될 총구 앞에서 담담하게 “Let’s do it”을 마지막 말로 남긴 개리 길모어처럼. 해서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은 깊이 들여다보면 실존주의(實存主義)와 맞닿아 있다.

인류 철학사에서 실존주의 이전까진 “왜?”라는 물음이 대단히 중요했는데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철학자들은 ‘이데아(Idea)’니 ‘관념’이니 하면서 늘 본질(本質)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니까 현상(現象) 이전에 본질이 있다고 믿었고, 그걸 주로 신(神)에게서 찾았었지만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의 고통에 무관심한 신에게 실망해 실존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주 언급했지만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그냥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일 뿐”이라고. 다시 말해 신이 우리를 버렸어도 ‘그냥’ 살아라는 것. 지금 힘들어도 구해줄 사람은 없으니 닥치고 그냥 그 일을 하라는 것. 사르트르는 이런 말도 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에어>에선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이 대사로 딱 두 번 등장한다. 한번은 소니가 조던에 대한 스카우트 작업을 막 시작할 때, 그리고 나머지 한번은 조던의 엄마(비올라 데이비스)로부터 조던의 최종 선택을 전화로 들을 때다. 아디다스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소니는 절망 속에서 조던의 엄마에게 “Just do it”이라 말한다. 실패를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으니 그냥 말하라는 것. 하지만 그냥 하다 보니 상황은 바뀌었고, 조던을 그냥 좋아하는 소니의 진심에 조던은 나이키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에어조던’이라는 불멸의 시리즈 농구화가 탄생하게 됐고, 나이키는 몇 년 뒤 업계 1위로 도약했다.

참, 그 모든 과정에서 소니의 역할도 컸지만 사실은 사장인 필 나이트의 공이 제일 컸다고 볼 수 있다. 최종 결정권을 가졌으니. 아이러니하게도 필 사장은 ‘나이키’라는 브랜드 명칭도, 로고도, 농구화 사업도 개인적으로는 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브랜드의 경우 그는 ‘디멘션6(Dimension6)’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부하 직원의 말을 들어 ‘나이키’로 했다고 한다. 조던을 스카우트할 때도 비용을 조던 한 선수에게 몰빵하자는 소니의 제안에 흔쾌히 허락하게 된다. 그 이유를 소니가 묻자 필 사장은 이런 뉘앙스의 대답을 한다. “걍(그냥) 자네가 열심히 하니까.” 2023년 4월 5일 개봉. 러닝타임 112분.

아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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