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약수마을 유래사(由來史)
내 고향 약수마을 유래사(由來史)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2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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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마을은 머잖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먼저 지맥이 잘려나간 곳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등성이들이다. 그것을 가로질러 도로가 났고, 땅밑으로는 터널이 뚫렸다. 마을 외곽은 온통 신도시로 바뀌었고, 전통마을은 도심 속의 섬 같은 형국이다. 가장 먼저 멸실된 곳은 산막등이다. 옛날에는 그곳이 ‘산방리’였는데, 후일에 ‘약수리’와 합쳐지면서 ‘약수’의 한 부분이 되었다. 현재의 ‘약수’는 ‘중산동’이라는 법정동의 일부가 되었고, 행정동은 ‘농소2동’에 속한다.

깨밭골 주변에 펼쳐져 있던 땅들도 다 천지개벽이 되었다. 수많은 논밭과 야산과 뻔디기들은 아파트 숲과 산업단지로 변했다. ‘약수(藥水)’가 솟아올랐던 약물탕도 운명을 다했고, 약수 사람들만이 아는 산줄기와 골짜기들의 이름은 모두 기억 속에 박제되었다. 정골과 기백이재로 이어지던 뒷들 길은 이제 종적을 감추었다. 흰독골과 대밭등, 돌티미, 새양만리가 사라졌고, 회양골을 오르내리던 호젓한 산길은 이제 걸을 수 없다.

마을에는 제주고씨를 필두로, 영천최씨가 먼저 정착했다, 이어서 문화류씨, 고령박씨, 학성이씨가 입향했는데, 이들은 제주고씨와 더불어 기박산성 임란 의사의 후손들이었다. 후일 밀양박씨, 흥려박씨, 청안이씨, 현풍곽씨, 월성이씨 등이 합류하면서 백여 호가 마을을 이루었다. 글 좋고 위엄 있는 어른들이 계셔서 법도가 엄격했고, 아래위가 정연했다. 근본과 예의범절을 기렸고, 세시풍속과 전통을 중히 여겼다. 그 옛날의 약수는 이처럼 반촌(班村)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마을은 또한 부촌(富村)으로 이름이 났다. 선인들은 산자락의 땅을 옥토로 만들었고, 동천강변 들논을 지성으로 가꾸었다. 지혜로운 어른들과 역대 이장들은 마을공동체를 위해 지혜를 모았다. 류인창 님이 관리에 힘쓰던 동산에서 송이버섯이 나자 공동 관리하여 마을기금을 조성했다. 그 기금으로 최진호 님이 새마을운동을 선도하여 전국 최우수 새마을로 선정되는 영광이 있었다. 배나무단지는 박복동 님이 선도했고, 고정용 님이 두루 권장하여 소득을 크게 올렸다.

1994년에 이수혁 님과 몇 분들이 결성한 ‘약수동산회’의 역할도 컸다. 동산(洞山) 내의 묘소 관리 체계를 갖추었고, 학교부지를 기부했다. 동산회 총회는 객지로 나가 살던 이들이 고향을 찾는 기회가 되었다. 마을은 다수의 박사학위자와 교육자를 배출했으며, 박재윤 장관과 이한호 공군참모총장 등 여러분들이 금의환향했다. 근래 들어 철길이 걷히면서 동네 인물이 훤해졌고, 백 년 전의 마을 모습을 되찾은 기분이서 참 좋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약수마을은 더 많은 부분에서 반추되고 있다. 아궁이의 불은 꺼졌고, 질화로의 재는 식은 지 오래다. 산모롱이 돌 때 울리던 기적 소리는 까마득히 멀어졌고, 줄지어 서 있던 신작로의 미루나무는 오래전에 잘려나갔다. 봇도랑의 물고기들과 찬물 듬벙 거머리들도 거의 소멸되었다. 감꽃과 풋감 줍던 일이나 밤나무 아래에서 서성거리던 유년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도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을 한시라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고향 약수마을은 이제 내일을 모른다. 마을 외곽이 상전벽해가 되어버렸으니 위 깍단과 아래 깍단도 언제까지 존속할지 알 길이 없다. 그 넓던 중보들과 오림이들의 논과 쌀이 대접받던 시절도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상황이 이러한즉 유래비를 세우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의견이 분분하여 관철되지 못했다. 좀 더 세월이 흐르면 향수와 자부심을 담은 약수마을의 유래는 전설이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다.

세상은 이제 인걸을 물론 산천도 의구하지 않다. 고향 산천과 옛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 이제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보자. “흰독골에 피어나던 참꽃들과 돌티미 바윗돌들이 기억 저편에서 손짓하고 있지 아니한가. 굴뚝 위로 모락모락 피어나던 저녁연기가 연상되지 않는가. 초가지붕 위로 하얀 꼬두박꽃이 피던 마을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골목길 지나 들어서던 고향집 댓돌 위의 고무신이 그립지 아니한가.”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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