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댁 이야기
장성댁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2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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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든여섯 되시는 여성과 이른 아침 매일 만난다. 장소는 삼호대숲이 보이는 중구 태화강 국가정원길 조류전망대다. 만난 지 오래지만 간혹 못 만나면 아쉽다. 필자는 조류관찰, 그분은 운동으로 나오신다.

세월에 장사(壯士)가 없다 하듯 그분은 몇 걸음 못 걸을 정도로 불편해하신다. “지금은 관절 땜에 뒤뚱거리지만 이래도 신작로 낼 때 내 등짝은 흙소쿠리, 돌소쿠리, 자갈소쿠리도 마다하지 않았지”라며 힘주어 말한다. 헤어질 때 그분의 끝인사는 늘 “소관 봅시더”이다. 한자 ‘所關’은 ‘관계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연륜이 쌓인 분이나 할만한 인사다. 다음 글은 장성댁(宅) 삶의 일부다.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 장성마을에서 3대째 살아온 집안에 딸아이가 태어났다. 2남 3녀의 장녀는 스물한 살 되던 해 동짓달에 배 장사를 하던 큰엄마의 중매로 소호마을 3남 5녀 집안의 스물넷 맏이 총각한테 시집갔다.

소호마을 인물 훤칠한 총각의 집안 사정을 살펴보니 소를 다섯 마리나 키우고 논농사도 많이 했다. 큰엄마가 시동생의 과년한 딸이 생각 나서 자랑한 것이 혼인의 발단이란다. 결정적 이야기는, 맏이지만 시집만 오면 살림을 내준다며, 인근 도시에 집까지 사두었다는 것이었다. 시집을 가니 소 다섯 마리는 확인되었다. 하지만, 살림살이 집 장만은 확인하지 못했다. 논 다섯 마지기는 시댁 가까운 곳의 이름있는 큰 사찰의 배메깃논이었다. 한해, 가을 추수가 끝나고 비탈진 토끼 길에 소작 벼를 실은 질매 소 걸음걸이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야 짐작했단다.

시집살이의 하루는 첫닭이 울면 일어나 몸단장하고 신랑과 함께 시부모님께 문안 인사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첫 닭은 왜 그리도 일찍 울던지…. 시아버지는 소를 다섯 마리나 키울 만큼 부지런하셨고, 시어머니는 봄 고치미(고비)를 칠팔십 단이나 할 만큼 봄 산에 살다시피 하셨다. 새색시 또한 부지런했다. 살짝 데친 고치미를 큰 멍석 위에 힘주어 비벼서 흩어 말리는 것을 반복했다.

고비는 손질이 쉬운 고사리보다 하얀 너울 벗기는 것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우물물을 하루에 서른 번을 길어 날라야 하는 일상에서 때때로 머슴 둘을 두고 농사짓고, 한해 묵혀 시집보낼 정도로 넉넉한 살림의 친정이 그리웠다. 집 앞 너른 개울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던 친정 마을이 아니던가.

하루는 찬물내기, 우마이, 숲피 마을이 이웃해있는 친정으로 갔다. 어머니께 고달프고 희망 없는 시집살이를 토로하고 헤어지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세월은 또 그렇게 흘렀다. “시어머니는 부엌일과 냇가 일(빨래일)은 며느리에게 맡기고 당신은 오직 산일(고비 꺾기)과 들일(나물 뜯기)이 운동이 되셨는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세상을 버렸다”고 했고 “시아버지(84세), 시어머니(92세), 친정아버지(64세), 어머니(92세), 바깥양반(87세) 모두 돌아가셨다”고도 했다.

범띠 처녀의 세월은 2남 1녀 어머니의 세월이었고, 머릿결은 학발(鶴髮)이 되었다. 일생 삶의 발자국이 결코 세 권의 책이라도 모자란다고 하시던 그 날도 한결같이 “소관 봅시더”라는 말을 남기고 불편한 걸음걸이로 뒷모습을 보이셨다. 한참을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문득 38년 범띠 동갑인 막내 숙모가 생각났다.

그분이 사흘째 모습이 보이지 않아 초조하다. “당신 나이에 나를 데려가소. 자는 잠결에…”라고 한 말이 머리를 스친다. ‘오늘의 내 생각이 부디 부질없는 걱정이 되기를’ 기대한 탓일까, 고개가 자꾸만 매일 걸어오던 곳으로 돌려진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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