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날’에 생각하는 ‘벚꽃엔딩’
‘지구의 날’에 생각하는 ‘벚꽃엔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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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SNS는 과거 나의 추억을 알려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2012년 3월 30일 기록에는 ‘벚꽃엔딩’의 감상평을 적고 벚꽃이 피면 아이들과 함께 벚꽃잎 사이를 걷겠다는 다짐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해 4월 14일에는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러 간 남원 벚꽃길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기록돼 있었다. 지난달 30일에는 왕벚나무의 꽃망울들은 대부분 꽃을 피웠다가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필자의 대학 및 대학원 시절, 벚꽃은 늘 중간고사 기간에 피어 마음 편하게 벚꽃 구경을 할 수 없어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농담까지 했는데, 이제는 그런 농담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해마다 열리는 봄꽃 축제들은 최근 3년간 코로나 사태로 열릴 수 없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 조치들이 대부분 풀린 올해는 수많은 지자체에서 봄꽃 축제를 기획했지만, 꽃들이 예상보다 너무 일찍 피어버려 ‘주인공이 없는 축제’가 진행되기도 했다. 기상청의 벚꽃 관측소 기록을 살펴보면 서울이 평년보다 약 15일 일찍 벚꽃이 피었고, 울산은 7일, 부산 9일, 제주 3일, 광주와 대구, 여수와 창원 8일, 전주 12일, 대전과 안동 13일, 청주 14일, 울릉도 16일로 모두 일찍 피었다. 기상청은 올해 벚꽃의 개화가 1922년 관측 개시 이래 2번째로 빨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가장 빨랐던 해는 언제였을까? 2021년! 바로 2년 전이었다.

기고문을 통해 수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기후변화의 속도가 날로 빨라지고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구의 지속적인 평균 기온 상승이 관측되고 있는데, 온도 상승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다른 지역들에 비해 기후변화의 속도가 빠른 것으로 평가된다. 한반도에서 기후가 가장 안정적인 곳이라는 우리 울산도 온도 상승 속도가 1990년대 이전에 비하면 2배나 증가했다. 기후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중요한 문제지만 그 속도가 가속되고 있는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해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동물들과 식물들은 서식지를 옮기거나 먹이를 바꾸거나 환경에 맞춰 진화하는 등 적응을 통해 멸종을 피해 종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은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해 더 적극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여기에 시간은 중요한 인자 중 하나다. 변화된 환경에 적절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응하는 시간보다 더 빠른 변화는 적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현재의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의 발생빈도와 규모가 커짐에 따라 피해가 증가하는 것도 있지만, 지구상에 있는 많은 생물종이 종의 유지를 위해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기후가 변화하고 있고, 그 속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멈춘다고 해도 지금까지 대기 중으로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변화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10여년 전부터 ‘적응’이라는 개념이 기후변화의 중요한 대응 전략이 되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되었고, 기후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속되었다. 이렇게 기후변화가 가속되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적응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즉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상징적 운동인 ‘지구촌 1시간 소등행사’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보름이나 일찍 피고 진 ‘벚꽃엔딩’을 생각하며 새삼 온실가스 감축의 시급성을 생각한다.

마영일 울산연구원 안전환경연구실 연구위원, 환경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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