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래식’ 사랑이 클래식해 질 때
영화 ‘클래식’ 사랑이 클래식해 질 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2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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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뤄지지 않은 사랑은 가슴 아프지만 좋은 구석도 있다. 이른바 ‘난리부르스’를 피할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사랑을 왜 난리부르스에 빗대냐고 하겠지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서 그 사랑이 이뤄져 본 사람이라면 아마 충분히 공감할 거다. 감미로운 발라드가 난리부르스가 되어 가는 말도 안 되게 슬픈 과정을. 마음이 식는 것도 이미 난리부르스인데 좋게 헤어지는 건 더 어렵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가끔은 철천지원수가 되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한다.

반면 그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을 땐 비록 감미로운 발라드의 선율을 타보진 못하겠지만 애초에 난리부르스를 겪을 일도 없다. 이뤄지지 않았으니. 대신 깊이 사랑한 사람이라면 오롯이 그리움만 남기 마련. 음악 장르에 빗대자면 그걸 ‘클래식(Classic)’하다 하지 않을까. 클래식이라는 음악이 그렇다. 고전적이면서 우아하다.

전설적인 한국 멜로영화 <클래식>을 무려 20년 만에 다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건, 어차피 난리부르스로 변할 발라드보다 이뤄지지 않아서 클래식한 사랑이 더 좋을 때가 있다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그랬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던 2003년 그해 난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게 됐고, 그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때 내가 했던 그 사랑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아니, 그 전에 그 사랑이 이뤄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보게 됐다. 참, 여기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서로 좋아했지만 손도 한번 못 잡아봤다는 뜻이다. 그냥 그런 게 있다고요. 뭘 깊이 알려고. 솔직히 누구나 그런 사랑 하나쯤은 갖고 있잖아요.

물론 한 때의 열정이나마 불태울 수 있다는 점에서 끝남의 슬픔은 시작도 못한 슬픔보다는 좀 더 행복할 거다. 그러니까 그 친구와 이뤄졌다면 그게 언젠가 끝이 났었더라도 지금은 추억이 됐을 열정을 불사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지 못한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예 시작도 못한 슬픈 사랑이라서 그 사랑이 여전히 신비로운 건 어쩔 수 없다. 아직도 그 친구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데 20여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오히려 모두가 원하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 되어 버렸다. 기억하는 한 사랑은 존재하니까.

그렇다고 지금 막 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20년이나 흘렀기에 만약 보게 된다면 서로 실망만 할 게 뻔하기 때문. 다만 <클래식>을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그때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간 듯해서 좋았다. 그리고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읽었던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 같은 글을 한번 써보고 싶어지더라. 이뤄지지 않아서 온전히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는 그런 예쁜 사랑이야기를.

해서 명장면으로 가득 찬 이 영화의 백미는 분명 2000년대 초반인 현재를 살고 있는 상민(조인성)과 지혜(손예진)의 사랑 이야기지만 오랜만에 다시 봤더니 이젠 70년대를 살았던 준하(조승우)와 주희(손예진)의 오래된 사랑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 그들의 사랑도 이뤄지지 않았음으로. 참, 이 영화는 70년대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준하와 주희의 사랑이 둘의 아들과 딸인 상민과 지혜로 운명처럼 되물림돼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는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된 수원에 살았다. 또 당시 내가 전화를 통해 고백을 할때도 영화 속 상민이 지혜에게 고백할 때 했던 대사처럼 “다 알아버렸잖아. 내 마음”이라고 말했었다. 느끼하면 김치드세요. 뭐, 하다보니 그리 나오더라고요. 어쩌라고.

아무튼 그래서였을까. 다시 영화를 보면서 준하의 갑작스런 베트남전 참전으로 헤어졌던 두 사람이 오랜만에 카페에 마주보며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가슴아프지 않고 이젠 살짝 부럽게 느껴지더라.

아까 이뤄지지 않고 20년이 지나가버린 사랑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라고 물었었죠? 그냥 한 편의 ‘클래식(Classic)’같죠. 웅장하고 고마운. 해서 이제 마흔을 훌쩍 넘겼겠지만 내겐 여전히 ‘그 아이’인 그 친구에게 이 말로 감사의 뜻을 대신 전하고 싶다. “행복하자” 2003년 1월 30일 개봉. 러닝타임 132분.

아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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