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나두야 간다, 나두야 가련다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나두야 간다, 나두야 가련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1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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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광산문화원 -용아 박용철의 예술과 삶 上·下

상대를 알고 싶을 때 먼저 그 사람 이력을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좀 더 잘 이해하려는 방편이다. 자서전, 평전은 그런 면에서 1차 자료가 된다. 광산문화원이 펴낸 ‘용아 박용철의 예술과 삶’도 그중 하나다. 2002년에 초판이 발행됐으나 나오자마자 찾는 이들이 많아 곧 절판, 2015년에 재판을 발행했다. 아쉽게도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비매품이다.

용아 박용철 선생, 한 사람만 떠올리면 누군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영랑(永?) 김윤식 선생과 나란히 두고 보면 ‘아, 그 사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영향을 주고받은 사이여서 더욱 그렇다. 이 책은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그가 살아온 생애를, 2권에서는 그가 남긴 작품 세계에 대한 전문가 해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중요하게 취급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그에 대한 이해를 네 가지로 말해두었다.

왜 그는 영랑보다 알려지지 못했는가? 시인으로서 재능이 떨어져 번역일에 매달렸는가? (입센, ‘인형의 집’을 번역하기도 했다) 비평, 연극에 매달린 까닭은 무엇인가를 묻고 가장 핵심인 부분, 오히려 그를 시인으로만 좁게 해석하려 한 실수는 범하지 않았는지 묻고 있다. 그가 남긴 문학 성과나 계승이 다소 더딘 점은 이른 죽음(35세)과 후학, 후배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시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대일 항쟁기인(일제 강점기는 일제에 의해 침략당했을 때 저항했던 한국인 관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표현이다) 1930년대, 출판 검열이 엄격한 시절이었음에도 순 한글로 된 ‘시문학’을 발간했다. 창간호 편집 후기에 남긴 글을 보면 심중(心中)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다.

‘우리는 시를 살로 새기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의 살과 피의 맺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는 지나는 걸음에 슬쩍 읽어 치워지기를 바라지 못하고 우리의 시는 열 번 스무 번 되씹어 읽고 외여지기를…’(1930. 3)

그는 요절(夭折)했다. 2, 30대에 몰(歿)인 경우를 주로 요절이라 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놓지 않았다고 주변은 증언한다. 죽음을 선택하거나 혹은 질병 등으로 인한 소멸이라도 떠난 자리는 언제나 극적인 독성을 남긴다. 자기 정신 최고 절정에서 별안간 삶을 놓거나 떨어뜨려 버린 희망에 궁금증이 생겨 그 이유를 찾아 몰려든다. (‘나∨두∨야’를 띄어 쓴 이유이기도 하다)

1984년 영화 ‘고래사냥’ OST 중 한 노래.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밭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편지를 쓰네……/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님 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

가수 김수철 씨가 부른 ‘나도야 간다’다. 노랫말이 박용철 시 ‘떠나가는 배’ 한 연을 떠오르게 한다. 많은 이가 알고 있고 즐겨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시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시대 고난과 시련으로 인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쫓겨 가는 사람들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아픔’은 ‘연대’를 통해 극복된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 시, ‘떠나가는 배’ 전부>

용아 박용철 시인이 남긴 작품 중 특히 시는 서정(敍情)으로만 읽을 게 아니다. 민족이라는 고결한 단어를 잊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다. 짧은 생애 기간, 그는 ‘우리다운 문학과 조선 문학 건설에 매진’한 분이다.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다. 그림자가 길게 따라오는 외등(外燈) 쓸쓸히 비치는 늦은 밤처럼 그렇게 한 사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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