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비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에브리씽 에비리웨어 올 앳 원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1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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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make each day count”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에서 타이타닉호의 3등실 승객인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우연히 바다에 빠질 뻔한 로즈(케이트 윈슬렛)를 구해주게 되면서 상류층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게 된다. 1등실 승객들에 둘러싸인 잭은 그곳에서 로즈의 엄마(프랜시스 피셔)와 그녀의 약혼자 칼(빌리 제인)로부터 가진 것 없는 장돌뱅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게 된다. 하지만 잭은 그들의 천대에도 시종일관 여유와 당당함을 잃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저로선 부족할 게 없어요. 제가 숨 쉴 공기와 스케치북 한 권.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누굴 만나게 될까, 어떻게 될까. 때론 다리 밑에서 잠들 때가 있는가 하면, 지금처럼 훌륭한 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샴페인을 할 때도 있죠. 전 삶이라는 신의 선물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우리 앞에 생이 왔을 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죠. 그러려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해요(To make each day count)”

세기의 걸작인 <타이타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특히 잭의 이 대사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해 많은 걸 시사한다. 평소 영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많이 배우고 있는 영화광으로서 영화 인생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잭의 이 명대사에선 여전히 많이 궁금한 부분이 있다. 바로 ‘어떻게 하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라는 것. 반백 살을 살아온 만큼 영화 속 잭처럼 별의별 일을 많이 겪었고, 죽음이란 바로 지금 곁에 있다는 것도 여실히 느끼면서 살아갈 나이인 만큼 지금까지는 매 순간 얼마 남지 않은 치약을 쥐어 짜내듯이, 혹은 매 순간 시간이 만져지듯 살아가는 거라 생각했더랬다.

물론 그것도 맞겠지만 얼마 전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생각지도 못했던 가르침을 주더라. 그러니까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려면 어떤 순간에도 ‘다정함’을 잃지 말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무려 양자역학(量子力學)에 기반을 둔 멀티버스(다중우주)를 활용하더라. 마블도 그렇지만 요즘 양자역학이 대세이긴 대세인가 보다. 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7관왕을 차지했었다.

영화는 홍콩의 한 가정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 결혼해 도주하듯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던 중, 남편의 이혼 요구와 하나밖에 없는 딸의 커밍아웃(동성애)으로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던 그때 멀티버스가 열리고, 속된 말로 정신 사납고 골 때리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마블의 <어벤져스>시리즈처럼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멀티버스가 열리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실제 양자역학의 기초이론을 정석으로 파고든다. 그러니까 토마스 영의 이중슬릿 실험에서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그냥 느닷없이 다중우주가 열려버린 것. 이중슬릿 실험? 자세한 내용은 직접 찾아보시고 결론만을 말씀드리면 일찍이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물질의 최소 단위인 광자(光子)나 전자(電子)가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는데 이중슬릿 실험 결과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게 밝혀지게 된다. 그러니까 물질의 최소 단위는 매 순간 접이식 부채가 펴지듯 파동을 형성하다가 누군가 보거나 인식하면 입자로 돌변한다는 것. 결국 최소 단위가 파동이기도 하다면 이 우주는 접이식 부채가 펴지듯 매 순간 여러 개의 우주로 갈라지고, 우리는 매 순간 선택에 따라 그 많은 우주 가운데 어느 한 우주에 속하게 된다.

쉽게 말해 오늘 아침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탔다면 다른 우주에서는 택시를 타거나, 몸이 아파서 출근을 안 한 내가 있다는 이야기다. 왜? 물질의 최소 단위가 접이식 부채가 펴지듯 파동을 형성하니까. 제가 그랬죠? 양자역학은 미쳤다고. 뭐, 그렇다해도 우주가 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런 양자역학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잖아요. 세상에 끝이 없는 존재는 없는데 우주에도 끝이 있다면 그 밖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요. 다른 우주들이 중첩돼 있을 수도 있다는 거죠. 해서 이 영화에 대한 전문가 평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건 이거였다. “인생은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확률 파동이면서 그 순간 실존하는 입자라네.”

결국 에블린은 가능성에 따라 갈라진 수없이 많은 우주들을 경험한 뒤 딸을 비롯해 지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이들을 향해 화를 내는 대신 다정함을 잃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우주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우주는 편안했다. 따뜻하고. 원래 그렇다.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참, <타이타닉>에 출연한 레오와 나는 동갑이다. 때문에 우주의 본질이 확률 파동인 만큼 ‘모든 건 어디에서나 한꺼번에 일어난다(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영화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쩌면 내가 레오로 태어난 우주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레오를 아니까. 해서 그쪽 우주의 레오(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금 나의 우주에서 이 대사 한 번만 쳐보자. 워낙에 좋아하는 대사니까. “To make each day count.” 2023년 3월 1일 개봉. 러닝타임 150분.

아상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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