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예쁜
꽃보다 예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0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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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막 피어나는 벚꽃들을 보는데 갑자기 아이들과 벚꽃놀이를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추진해야 한다. 금요일 종례할 때 월요일 학교 마치고 벚꽃 구경 갈 사람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다들 학원이나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시간이 되는 사람만 가기로 했다. 멀리 가면 부담스러우니까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교감 선생님께도 일과 후에 아이들과 학교 앞 공원으로 꽃놀이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구경만 하자니 좀 허전해서 함께 먹을 음료수와 과자도 준비했다. 벚꽃이 만발한 공원을 산책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들과 산책이라…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함께 모여서 뭔가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힘들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 벚꽃 사진전과 보물찾기를 하기로 했다.

빨리 보물을 만들어서 숨겨야 하는데 그날따라 바빴다. 수업도 계속 있고, 학기 초라 제출해야 할 것도 많았다. 잠시 짬을 내서 보물을 만들었다. 1등, 2등, 3등이 아니라 다람쥐 하나, 여우 셋, 사자 다섯이다. 자신이 뽑은 보물이 3등이라는 사실에 실망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일부러 동물 이름으로 보물을 만들었다. 다행히 마지막 시간이 수업이 비어 후다닥 뛰어가서 보물을 숨기고 왔다. 필자가 봤을 때는 허술해서 너무 쉽게 끝날 것 같았지만 찾으라고 숨기는 보물이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간단하게 종례를 마치고 시간 되는 사람들은 공원으로 오라고 했다. 특별구역 담당 선생님에게 오늘 특별구역 청소는 내일 아침에 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음료수와 과자 박스를 들고 공원에 가니 절반 조금 넘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공원에 도착한 아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물부터 찾고 있었다. 보물찾기는 생각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못 찾겠다고 힌트 좀 달라는 아이부터 아직 남아있는 보물이 있냐고 물어보는 아이까지 제각각 보물찾기를 즐기고 있었다. 보물을 찾았다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모습은 너무 예뻤다.

보물을 다 찾은 뒤 벚꽃 사진전을 시작했다. 아직은 조금 서먹서먹할 때라 서로 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친구들과 꽃이 나오는 사진을 찍어서 개인 톡으로 보내도록 했다. 얼굴을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얼굴을 지우거나 손 등 일부만 찍어서 보내도록 했다.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벚꽃놀이 기념 단체사진도 찍었다. 사진전을 마치고 근처 의자에 앉아서 과자와 음료수를 먹었다. 스무 명 가까운 아이들이 과자를 먹었는데 흘린 과자 부스러기도 거의 없었다. 놀라웠다.

아이들에게 제공한 과자와 음료수, 보물, 사진전 상품 모두 학급비로 지출했다. 예전에는 학급비도 거의 없었고 어쩌다가 있는 학급비라고 해도 사용하기가 무척 불편했다. 단돈 만 원이라도 사용하려면 담당 부장, 교감 선생님 때로는 교장 선생님까지 모두 보고하고 공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갑자기 일정을 바꿀 때는 다시 공문을 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학급비를 개산급(槪算給)으로 지급하고 있다. 개산급은 정해진 학급비를 미리 지급하고 나중에 정산서를 작성하여 처리하는 방식이다. 학기 초에 담임교사의 통장으로 학급비를 지급한다. 담임교사는 학급 운영 철학에 따라 유연하게 학급비를 집행할 수 있다. 영수증을 첨부한 정산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회계 처리도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학교에서 교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씩 많아지는 것 같다. 한 번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는 없지만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급하게 진행한 행사라 상품을 미리 구입하지 못했다. 마트에서 보물찾기 상품을 사면서 사진전 참여 작품을 다시 살펴봤다. 사진전에 참여한 아이들 수만큼 상품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벚꽃을 배경으로 찍은 아이들 사진은 참 예뻤다. 어떻게 보면 꽃보다 더 예쁜 것 같기도 했다. 얼굴을 가려서 그런가? 하하.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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