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이중섭의 은지화 한 점
-261- 이중섭의 은지화 한 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0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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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울산에 미술관이 생기니 자주 방문하지는 않더라도 내 삶이 한층 풍요로워진 듯하다. 매우 추상적이지만, 우리 주거지에 문화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다면 왠지 넉넉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때에 맞춰 훌륭한 미술품을 감상하고 멋진 오페라나 연주회를 경험하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인생이다. 울산에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고급문화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매우 다행이다.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시대안목’이 열리고 있다. 재벌가에서 차곡차곡 모은 귀한 미술품들을 나라에 기증하고, 이것이 수장고에서 나와 전국을 돌면서 관객과 조우(遭遇)하고 있다. 이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다. 삼성가에서 부(富)를 활용해 예술품을 수집한 것은 본받을 만하다. 카타르의 공주 셰이카 알 마야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아트파워를 과시하며 세계적인 고가 미술품을 사 모으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하지만 우리나라 재벌도 그에 못지않은 열정으로 귀중한 미술품을 모으고 그것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 그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관객들과 만나던 귀한 작품들이 울산에 온다는 소식에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거장들의 작품을 눈앞에서 감상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미술관에는 울산시민들로 가득했다. 모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나는 평소 이중섭의 그림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그의 그림을 다양하게 들여다봤고, 간혹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 그는 우리 현대사의 급변하는 시대를 살다 간 인물이며, 그 과정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황소 그림에서는 우리 민족의 순박하고 우직한 유전자를 표현했고, 개구쟁이 아이들의 그림에는 그의 개인사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민족의 삶을 가장 잘 구현해 냈다.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은지화 한 점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오줌싸는 아이’라는 작품이다. 원산이 고향인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북한의 박해를 피해 남하했다. 그 후부터는 가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와 함께 부산 피난민 수용소에 거주하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서귀포시에 있는 이중섭공원의 거주지에 정착했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골방에 조카 둘과 아내까지 네 식구가 기거하면서 큰 수입 없이 가난한 예술가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

그때는 캔버스나 물감을 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양담배의 곽을 감싼 은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산에 살 때 아내가 일본에서 건너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으나, 첫돌 무렵 중병으로 잃고 만다. 그래서 그가 남긴 은지화에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담은 소재가 가장 많다. 그리고 서귀포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게를 잡아 연명하던 시절의 궁핍했던 삶의 모습을 남겼다. 그러나 이중섭은 “제주도에서 살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술회한다.

작은 그림이지만 그가 남긴 은지화는 자유롭고 경쾌한 선의 향연이며, 고통스러운 예술가의 일상을 극복하는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은 세계적인 미술관인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가난했으나 천재성을 지닌 한 예술가의 작품이 그날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자유롭고 행복했던 삶도 함께 내 가슴에 스며들었다. 울산에서 이런 기회를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고맙고 행복하다.

초금향 떡만드는앙드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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