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총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
우리는 총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0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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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리처드 레이놀즈-게릴라 가드닝

1973년 어느 날, 뉴욕 한 도심에 살던 몇몇이 쓰레기가 넘쳐나는 버려진 땅(엄격히 말하면 사유지)을 정원으로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이를 본 주민들은 환호했고 뒤늦게 나타난 땅 주인은 불같이 화를 내며 손대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후 7년간 소송이 이어진다. 이를 지켜보던 뉴욕시가 이 땅을 매입,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들은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했을까? 이유는 단 하나. 방치하거나 내버려 두는 일은 수치이자 낭비라는 생각에서다. 조성(造成)이라는 명목으로 잘 가꾸어진 공간은 언제나 사진 찍고, 발자국을 남기고 시간만 죽이고 오면 된다. 참 편리하고 고마운 마음이 생길 법하다. 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관리인 혹은 CCTV가 지키고 있고 출입하는 일도 규정과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이를 어기면 즉시 퇴출, 사정에 따라서는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책을 펼치면 세계 전도가 한 눈에 먼저 들어온다. 세계 30여 개국 이상에서 조성한 핫 스팟, 게릴라 가든이다. ‘작은 전쟁’이란 뜻을 가진 게릴라는 정규군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비정규 부대다. 그렇다고 해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 말해서도 안 된다. 치고 빠지고 허를 찌르는 전술로 상대방 넋을 놓게 하기도 한다. ‘일당백’ 정신이 그들을 이끌고 간다.

게릴라 가드닝은 합법과 싸우는 공격을 감행한다. 자기 소유가 아닌 공터, 버려진 땅이라 부르는 곳도 주인은 존재한다. 하지만 관리가 소홀하거나 외면하는 곳은 언제나 더럽고 오염에 노출되어 있으며 범죄 온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곳에 나타나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우는 ‘그린 게릴라’들 이야기는 땅을 빼앗거나 점령하는 전쟁터가 아니다. 비록 남의 땅을 불법으로 꽃밭으로 가꾸는 작업이지만 이들은 알고 있다. ‘이런 싸움이 사회를 바꾸는 일’임을.

정원(庭園)은 집 안에 만든 뜰이나 꽃밭이어서 소유인 손에 의해 보호되고 양육되지만 길 가 꽃밭은 열려있는 곳이며 누구든지 자유롭게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돈 주고 살 필요도 없다. ‘함께’를 공동선으로 여기는 마음이 움직인 결과물이다.

‘쇠스랑과 꽃으로 쓰레기와 싸운다’는 캠페인은 시든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도심을 환하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황폐화한 사람들 마음조차 부드럽게 치유해준다. 이 운동은 혁명이다. 주변 문화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장소를 모두가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힘. 우리가 사는 곳은 과연 그러한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비록 총 대신 꽃으로 싸우는 일 일지라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씨앗 폭탄’뿐이다.

이 책에는 게릴라 가드닝이란 무엇인지 무엇과 싸우는지, 전장에서 살아남는 법까지 상세하게 가르쳐 준다. 이른바 게릴라들을 위한 활동 가이드다. 한발 더 나아가 점령한 불법을 합리화로 이끄는 전술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결국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깨우쳐 주는 공동체를 향한 희망 메시지다. 꽃밭을 가꾸는 일은 그 행위로도 훌륭하지만 이 간단하고 쉬운 노동을 통해 생명 존중, 지구 살리기, 먹을거리에 관한 고민 등을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까지 길러준다.

‘심는다’는 말에는 ‘기다림’이 포함되어 있다. 한순간에 모든 게 변할 것이라는 희망은 종종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만 변화는 슬그머니 찾아오되 어느 날 눈부시게 개화(開花)한다. 그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바른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수 정훈희 씨가 부른 ‘꽃밭에서’란 노래 중 일부다. ‘그 님’은 누구일까?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나를 가꾸는 일도 소중하지만 시야(視野)를 넓혀 이웃을 가꾸는 일도 바람직하다. 결국 사는 일은 공동체 몫이니 말이다. 빈 곳을 채우는 일, 허물어진 담장을 다시 세우는 작업은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이자 지름길이기도 하다.

‘빨치산’, ‘유격대’, ‘파르티잔’ 등 어떤 말로 불러도 ‘게릴라’다. 이들은 파괴를 일삼은 무리가 아니라 느닷없이 언제 어느 곳에서든 나타나 ‘꽃 전쟁’을 치를 준비를 마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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