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전 4월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104년전 4월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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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진달래에 이름 모를 풀꽃까지 거리마다 봄꽃이 한창이다.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은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울산시민이라면 4월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4년 전의 4월은 우리 선열들의 처절하면서도 자랑스러운 달이었기에.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는 경술국치 이후 10년간 일제 무단통치 속에서 응어리진 울분을 안으로 삭여야만 했던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배를 거부하고 이 나라의 주인임을 스스로 밝히면서 이를 세계만방에 천명했다.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소리와 태극기 물결은 삼천리 방방곡곡을 뒤덮었고, 이 땅에 최초의 민주공화정 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로써 우리는 ‘군주국가’에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역사적인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대한독립 만세운동에는 종교인, 학생, 기생, 해녀, 농민, 거지 등 신분, 직업, 성별, 종교를 가리지 않고 전 계층, 전 민족, 전 지역이 참여한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독립운동이었다. 기미년 3월,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그해 내내 전국각지로 퍼졌고, 그 열기는 한 달 뒤 우리 울산에서도 어떤 곳 못지않게 뜨거웠다.

울산의 만세운동은 △4월 2일 언양 의거 △4월 4∼5일 병영 의거 △4월 8일 남창 의거가 대표적이다. 세 의거는 지역도 주도세력도 모두 달랐다. 먼저, 언양 의거는 고종황제 인산(장례식)에 참가한 천도교 울산교구장 김교경과 교인, 지역유림이 중심이 되어 언양 장날인 4월 2일, 행동을 개시했다. 상남·하북·언양·두동·두서·삼동 등지에서 모인 장꾼 2천여 명은 ‘조선인이면 누구든 만세를 부르라’란 함성을 시작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병영 의거는 서울에서 귀향한 병영 출신 유학생이 병영청년회 간부들과 거사를 준비하고 4월 4일 병영 일신학교(현 병영초) 교정에 학생과 군중을 모아 축구공을 높게 차올리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만세운동이었다. 병영 의거 첫날 일제의 폭압으로 강제로 해산된 군중 수천 명은 거사 이틀째인 5일, 병영성 밖 주민까지 합세한 가운데 일경과 일진일퇴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엄준, 주사문, 문성초, 김응룡 등 네 분은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순국하시고 말았다.

남창 의거는 온양·온산지역 이씨 문중이 기반이 되었다. 기미년 고종황제 인산에 참가한 이재락 선생과 문중 원로들이 중심이 되어 거사 날짜를 4월 8일 남창 장날로 정한 다음 밤을 새워 태극기를 만들었고, 장날에 모인 장꾼들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104년 전 4월, 울산에서는 조직기반과 주도세력은 달라도 그 중심에는 민중이 있었고, 그 민중은 일본 헌병들의 총칼 앞에서도 분연히 맞서면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극심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민중의 힘은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고장의 선열들은 그 힘을 몸소 실천하셨고, 그 힘은 아직도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울산에서는 매년 4월이면 그날 선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한독립 만세 재현행사가 거행된다. 4월 2일은 언양장터, 4월 6일은 삼일사와 병영 일대, 4월 8일은 남창장터에서 각각 열린다.

그리고 울산에는 지금도 독립 만세운동을 기리는 현충 시설이 곳곳에 있다. 언양시장 한복판의 3·1 독립운동 사적비, 병영성 근처 삼일사와 병영초등학교 안의 병영 3·1운동 기념조형물, 온양초등학교 옆 남창 3·1의거 기념비가 그것이다. 이 뜻깊은 계절 4월, 104년 전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는 가족 나들이가 언양, 병영, 남창으로 꾸준히 이어지길 희망한다.

김창엽 울산보훈지청 보훈선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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