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3.30 2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파우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은 절친 사이다. 나이는 콜름이 더 많았는데 둘은 매일 펍(Pub)에서 같이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우정을 쌓아갔다. 또 그게 살아가는 낙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파우릭은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파우릭은 콜름의 집에 들러 펍에서 만날 약속시간을 잡으려는데 콜름은 창밖에서 말을 거는 파우릭을 본체만체하면서 연신 담배만을 피워댔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파우릭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는 그날 펍에서 콜름으로부터 절교를 당하게 된다. 한없이 다정했던 사람이었기에 파우릭은 절교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결국 콜름을 찾아가 이유를 묻는다. 혹시 잘못한 게 있으면 고칠 테니 말해달라면서. 하지만 돌아온 건 변심한 친구의 차가운 이 한마디였다.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이니셰린’이라는 아일랜드 인근 작은 섬마을이었고, 본토(아일랜드)에선 내전이 한창이었다. 참, 파우릭이 그날 콜름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무지개가 떠 있었다.

‘마음’이란 게 그렇다. 경로가 불분명하다. 그러니까 마음은 움직일 때 자취나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 좋았던 마음이 나빠지는 건 순식간인데 왜 나빠지는지 경로를 추적해보려 해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특히 혼자 있을 때. 만약 그 원인을 알 수만 있다면 ‘조울증’같은 정신질환은 쉽게 치료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당신도 마음이란 걸 달고 살다 보니 뭐 이런 게 다 있냐 싶겠지만 이 우주상에는 이런 마음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물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미시세계의 ‘전자(電子)’인데 전자의 유령 같은 움직임 가운데 하나인 ‘양자도약(量子跳躍)’이 마음의 이런 특징과 사실상 같다. 그러니까 전자 역시 때때로 궤도를 바꿀 땐 현 위치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홍길동처럼 번쩍하면서 다른 궤도에서 나타난다는 것. 그래서 말인데요. 전자(電子)라는 건 혹시 마음을 구성하는 물질이 아닐까요? 둘 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한 양자역학(量子力學)은 ‘마음의 물리학’같은 건가?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물질의 물리학’이라면. 어머머!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1920년대 아일랜드의 작은 섬마을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냐고! 기가 찬다, 진짜. 아, 됐고, 아무튼 마음이라는 것도 이렇듯 전자차럼 자주 도약을 하는데 그럴 때 쓰라고 ‘그냥(Just)’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랬다. 콜름이 절친 파우릭에게 느닷없이 절교를 선언하게 된 건 그가 내뱉은 대사처럼 ‘그냥’이었다. 전자(電子)처럼 마음이 그냥 도약을 해버린 것.

해서 이 영화에선 콜름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절교 선언 이후 둘의 행동을 눈여겨봐야 하는데 그 때문에 영화는 둘이 친하게 지냈던 장면은 아예 보여주지 않은 채 절교 이후의 이야기로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가득 채워 나간다.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파우릭의 태도. 그냥 “그럴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될 걸 파우릭은 싫다는 콜름에게 계속 말을 걸게 되는데 그런 그를 떼어 놓기 위해 급기야 콜름은 엽기적인 발언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앞으로 말을 걸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잘라버린다.

이쯤되면 콜름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이제 실존주의(實存主義)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어제까지 절친으로 지냈던 사람과 갑자기 절교를 선언하고, 갑자기 자신의 손가락까지 자르는 콜름이라는 존재는 본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이해불가한 우리들 삶으로 치닫는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같이 싸웠던 아일랜드였지만 독립 조건을 놓고 이젠 둘로 갈라져서 내전을 벌이는 풍경은 오랫동안 절친으로 지내다 갑자기 갈라선 파우릭과 콜름 같았던 것. 둘 다 이해 불가다. 하긴, 누가 관여하지 않고는 이 위험천만한 우주에서 이토록 완벽한 세상을 창조할 수 없을 터인데 여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분(神)도 계신데 짜더러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해서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라는 존재를 이렇게 규정했다. “인간은 그냥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일 뿐”이라고.

또 ‘니체’는 파우릭처럼 절친으로부터 어이없는 절교를 당한 이들을 위해 이렇게 말했다. “삶은 언제나 파괴(고통)와 창조(행복)가 반복되는 모순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긍정해라.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은 끝없는 긍정이고 파괴할 수도 창조할 수도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축복이다.”

맞다. 사는 게 열라 힘들어도 무지개는 뜬다. 절교를 당한 그날, 콜름을 만나기 위해 파우릭이 걸었던 그 길처럼. 2023년 3월 15일 개봉. 러닝타임 114분.

아상길 정치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