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살구 벤치마킹
개살구 벤치마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3.2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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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카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희/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 감던 순희가, 다홍치마 순희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희, 순희/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냐/ (옛 가요 <에레나가 된 순희>의 가사)

노래 속의 ‘순희’는 ‘에레나’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마도 만승천자식이위대(萬乘天子食以爲大=‘만 승의 천자라도 먹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의미)라는 말이 있듯 시대적으로 먹고살기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근래 들어 울산은 허울 좋은 ‘개살구 벤치마킹’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개살구는 겉은 그럴듯해도 속은 보잘것없음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벤치마킹(benchmarking)’은 대상을 설정하여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장점을 바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름 바꾸기 사례 몇 건을 신문기사에서 찾아 나열해본다.

△“지역 대표 축제였던 처용문화제가 올해부터 ‘산업문화축제’로 대체되는데 산업문화축제의 경우 사실상 지역 기업들의 참여가 핵심이다. 1991년 이전까지 지역 대표축제였던 공업축제의 부활로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같은 주력산업들이 주축이 돼 축제를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3.01.09. 울산제일일보- <울산시, ‘주력산업 고도화’로 성장동력 강화 속도>)

△“김 시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태화강역’이란 현재 이름 대신 울산의 관문에 걸맞게 본디 이름인 ‘울산역’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23.01.31. 울산제일일보- <명칭 변경 바람 ‘태화강역→울산역’>)

△“울산 중구가 21일 청사 중회의실에서 김영길 중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2023 태화강 마두희 축제 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 ‘울산마두희축제’가 ‘태화강 마두희 축제’로 이름을 바꾸고 원도심 상권 활성화에 속도를 낸다.” (2023.02.21. 울산매일- <‘태화강 마두희 축제’로 6월 초여름에 만나요>)

△“울산 남구가 삼산동에 위치한 음식점 밀집 지역인 ‘왕생이 먹거리마실’을 ‘왕리단길’로 변경한다. (중략) 지역의 옛 이름인 ‘왕생이 들에 있는 경리단길’이라는 의미인 왕리단길로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 (2023.03.09. 울산신문- <왕생이 먹거리마실, 왕리단길로 명칭 변경 추진>)

△“울산박물관(관장 조규성)은 17일 발간되는 봄호부터 소식지 명칭을 <울산박물관 소식>에서 <울산박물>로 변경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번에 변경된 명칭인 ‘울산박물’은 지역명인 ‘울산’(蔚山)과 ‘박물’(博物)을 합쳐 만든 합성어다.” (2023.03.18. 경상일보- <울산박물관 소식지 명칭 ‘울산박물’로 변경>)

기관이나 단체에서 굳이 이름을 바꾸는 것은 나름대로 사연이 있어서일 것이다. 예를 들어, 2003년 <사랑의 밧줄>이란 가요로 스타 반열에 오른 가수 김용임은 민경, 그동안 지운, 명주, 미란과 같이 네 번이나 개명한 끝에 지금은 처음 이름인 ‘용임’으로 되돌아가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속담이 있다. 자문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하지만, 독창적 디자인이 없는 자문은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이다. 그릇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음식을 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전문가적인 학명구고(鶴鳴九皐),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찾아야 한다. 수주대토(守株待兎), 마권찰장(摩拳擦掌), 할미새 꽁지 방정 등 잎만 무성한 무화과와 빛 좋은 개살구만 선호하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지, 그것이 염려스럽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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