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서거 113주기를 맞아
안중근 의사 서거 113주기를 맞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3.2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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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하얼빈’, 뮤지컬과 영화 ‘영웅’,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꿈’ 등 지난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안중근 열풍에 휩싸였다. 해가 바뀌어도 ‘안중근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안중근 열풍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순신과 함께 모든 국민이 흠모하는 영웅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역사 속에 박제된 영웅이 아니다. 경제 불황과 사회적 위기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에게 고압 전류 같은 공감과 위로를 주는, 여전히 살아있는 ‘국민 영웅’이다.

중국 동북 3성 중 하나인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광장 왼편으로 돌아서면 작은 문이 하나 있다. 지난 2019년 4월 1일 재개관한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다. 중국에는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와 정율성 작곡가의 기념관이 있다.

이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선 안중근 의사를 향한 중국인들의 존경심이자 근대사 속 조선인을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숨은 의도까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거사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9시 30분에 멈춰있다.

전시관을 반쯤 돌면 하얼빈역 1번 플랫폼이 유리막 건너편으로 훤히 보인다. 이곳이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의 총탄을 쏜 바로 그 역사적 장소다. 안중근 의사가 쏜 세 발의 총탄은 동양 평화를 깬 일본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 박혔고 항일투쟁의 상징으로 남게 됐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하얼빈 의거 후 6개월 만에 순국한다. 안 의사는 사형 집행 5분 전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란 뜻의 유묵(遺墨)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을 쓰고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안 의사는 국사범이었지만 침대와 책상이 있는 독방을 받을 만큼 일본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안 의사는 총 6번의 공판을 받았다. 뤼순 감옥과 관동법원을 오가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5가지 이유를 들며 정당함을 역설했으나 일본군은 극비리에 사형을 결정한다.

햇살 한 줌도 들어오지 않았을 사형장은 여전히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관동 법정은 오히려 패기와 의연한 절개가 느껴진다. 이 세계적인 재판에서 승리자는 안중근 의사였다. 그는 월계관을 쓰고 법정을 떠났다. 그의 진술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중국이 뤼순 감옥과 관동법원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목적은 결국 평화에 있다. ‘동양 평화론’을 강조한 안중근 정신이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가 순국 직전까지 감옥에서 써 내려간 ‘동양 평화론’은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가 공존하며 경제발전을 이룰 비책을 담았다. 3국이 ‘상설 평화회의체’를 만들어 공동은행 설립, 공용화폐 발행, 합동군 양성 등을 역설한 부분은 유럽연합(EU)을 떠올릴 만큼 놀랍다. 독일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에도 비견될 만하다.

오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 되는 날이다. 1918년 일본 해군 지도엔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 옆에 묻힌 것으로 되어 있지만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동반자로서 미래로 나아가려면 일본이 성의 있게 내놓을 조치가 널려 있다. 안중근 의사 유해야말로 일본이 실토할 문제다. 유해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지만 온 나라가 안중근을 부르고 있다.

영화와 뮤지컬에서 안중근이 노래하는 ‘장부가’는 이렇게 흘러간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안수일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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