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안목’을 생각해본다
‘시대 안목’을 생각해본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3.2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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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립미술관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시대 안목(時代 眼目)>을 열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예술품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이라 특별히 주목을 받는다. 보고 싶었던 만큼 보름 전 인터넷으로 사전예매를 해두었다.

이건희 컬렉션은 고(故) 이건희 회장 개인이 소장하던 미술품 컬렉션으로 2020년 10월 그가 떠난 후 삼성 일가가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일컫는다. 기증한 미술품 2만3천여 점의 작품 가운데 일부가 전시되었다니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며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관람 당일의 기다림은 비도 함께 데려왔다. 쏟아지는 빗방울 수만큼이나 휴일 미술관은 관람객들로 술렁였다. 시간이 되자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고무줄처럼 자꾸만 늘어났다. 도슨트와 함께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사이 실내 외부의 현대설치미술에 시선이 머물렀다. 잠시 가상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제2전시장 입구에서는 ‘시대 안목(時代 眼目)’이란 제목이 눈길을 끈다. 과거로의 여행, 아니 과거를 통한 미래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미술관 측은 193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80년이라는 세월을 아우르는 거장 40여명의 명작을 시대별로 나누어 전시해 놓았다. 네 가지 키워드는 △‘탄생-미술가로 눈을 뜨다’ △‘성장-독자적 양식을 모색하다’ △‘정착-한국적 모더니즘을 구현하다’ △‘확장-모더니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수묵채색의 8폭 병풍 속 고기들이 비늘을 번쩍이며 뛰어오르는 듯하다. 이 대형 작품은 변관식 작가의 <어락>이다.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생동하는 고기들의 에너지가 관람객에게 다가드는 느낌이다. 전시장 안은 넘쳐나는 인파로 어깨를 부딪치게 했다.

이내 전시해설을 들으려 몰려드는 사람과 지나가려는 사람의 동선이 얽히고 만다. 작품을 찬잔히 보려 해도 서로 방해가 되어 집중할 수가 없다. 점점 밀집도가 높아지면서 공기가 탁하게 느껴진다. 해설도 작품 감상도 뒷전이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는 흥미마저 잃게 되고 만다. 아직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실내는 답답하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1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기에는 전시실이 너무 좁은 듯했다. 관람객들이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시공간.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넣어야 했을까? 사전예매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 건가? 쾌적한 분위기 속 관람은 희망 사항일 뿐일까? 사전 준비는 제대로 한 것일까? 인원 배치를 공간에 맞도록 할 수는 없었을까? 미술관까지 멀리서 달려온 관람객의 마음은 어떠할까? 귀한 작품을 대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어졌는지? 머릿속에서 질문거리가 끝없이 이어지기만 한다.

작년, 다른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던 때가 자꾸 떠올랐다. 동선이 얽히지 않도록 도슨트가 시차를 두고 최소한의 관람객 앞에서 친절히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또 표를 미리 구한 예매관람객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일반 관람객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면서 ‘예약관람객 우선’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배려 깊은 모습도 보았다.

이건희 회장은 컬렉션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평생 즐겁게 보며 지낼 수 있는 작품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들 컬렉션 작품 앞에서 많은 분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는 시대 안목을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해 ‘특별 전시’란 이름을 붙였다. 삶에 대한 관조와 깊이 있는 통찰의 전시공간이 또 다른 창의력으로 가닿아서 미래의 안목을 키우는 그런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이것이 이 회장의 열정과 감성이 담긴 작품들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김뱅상 시인, 현대중공업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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