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솜할머니
풀솜할머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3.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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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연세는 내년이면 100세가 된다. 4년 전만 해도 혼자 밥을 해 드실 만큼 건강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셨다. 외손녀를 보고 “니가 누고?”하고 물어보실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나는 말 없이 당신을 꼭 안아드렸고, 그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곤 했다.

평일엔 요양보호사가 몇 시간씩 간호했지만, 친정엄마는 하루에도 몇 차례나 오가면서 외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외삼촌들도 자주 외할머니를 뵈러 갔지만, 대부분의 일은 친정엄마의 손길이 닿아야만 했다. 하지만 쓰레기를 태운다고 불을 지른다든가, 가스레인지에 켜놓은 불을 끄지 않는 일이 차츰 늘어났다. 치매 증세가 더 나빠진 데다 화재 위험까지 있어서 도저히 혼자 계시게 놔둘 수는 없었다.

얼마 후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에 평생 파마 한 번 안 한 채 동백기름을 바르고 단아하게 비녀를 찌르고 계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짧게 커트한 당신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가끔 면회하러 갈 때마다 눈물을 보이시는 바람에 돌아서는 가족들의 마음은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지금은 외삼촌 집에서 지내면서 간병인의 돌봄을 24시간 받고 계신다. 외삼촌은, 당신께서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마음에 집에서 모시게 되었다고 했다. 그 뜻을 말없이 따라준 외숙모의 속 깊은 마음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내 유년 시절의 외할머니를 떠올려본다.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내가 갈 때마다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을 내 손에 꼭 쥐여주시던 외할머니. 가을 끝자락에 홍시를 큰 대야에 이고 와서는 겨울 간식으로 먹으라고 하셨던 외할머니. 노을빛을 닮은 홍시를 볼 때마다 그때 사주신 꿀맛 같던 홍시가 떠오른다.

‘풀솜할머니’란 외손에 대한 애정이 따뜻하고 두텁다는 뜻으로, 외할머니를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는 게 국어사전의 풀이다. 외할머니도 그런 분이시다. 친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안 계신 우리 남매에게 친할머니의 역할까지 해주신 참 감사한 분이시다.

봄이면 쑥을 캐서 쑥국을 끓여 먹을 수 있게 정갈하게 가려 주셨고, 쑥이 한 뼘쯤 자라면 쑥떡을 만들 수 있게 삶아서 주셨다. 어디 그뿐인가. 팥 농사를 지어서 주신 덕분에 팥죽이며 팥시루떡도 많이 해 먹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신분의 높낮이를 안 가리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었다. 옛날에 배고픈 거지가 찾아오면, 쌀밥 한 번 먹기 힘든 가난한 살림에도 밥상을 정성껏 차려 주셨다고 한다. 내 집에 찾아온 사람은 누구나 귀한 손님이라며 정성을 다하신 덕분인지 훗날 좋은 일도 많이 생기셨다.

10여년 전 외할머니가 직장암에 걸리신 적이 있었다. 수술을 안 하고 그대로 두면 6개월 정도밖에 못 사신다는 말이 돌았다. 그때 당신은 “이제 때가 왔다. 내가 지금 죽으면 제일 좋은 때다.”라고 하시며 수술을 원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가족들은 평생을 외할아버지 병간호하랴 자식들 키우랴 무척이나 고생하셨는데 이대로 보내 드릴 수 없다며 수술을 시켜드렸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고 회복도 예상보다 빨랐다.

그런데 지금은 현대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려 당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실 때가 많다. 늘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주셨던 나의 풀솜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뿐이다. 이 세상 소풍이 끝난 후엔 부디 좋은 기억만 안고 편히 쉬시기를 기도드려본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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