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 ‘김래원’이라는 배우
해바라기 - ‘김래원’이라는 배우
  • 이상길
  • 승인 2023.03.0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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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바라기' 한 장면.
영화 '해바라기' 한 장면.

 

얼마 전 두 명의 절친 대학 친구들이 울산으로 내려왔다. 거의 1년 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됐는데 두 친구 중 한 친구의 이름이 영화 <해바라기>의 주인공 ‘오태식(김래원)’과 같다. <해바라기>가 개봉하기 훨씬 전부터 절친으로 지냈던 만큼 2006년 11월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진 친구의 이름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영화 개봉 이후 그 친구의 이름은 조금 특별해지게 됐다. 보시다시피 내가 영화광이다 보니.

해서 셋이 오랜만에 같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친구의 이름 때문에 영화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오게 됐는데 그 순간, 문득 <해바라기>를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이 강렬해지더라. 왜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보고 싶어질 때. 결국 난 친구들을 보낸 뒤 아주 오랜만에 <해바라기>를 다시 보게 됐다.

하, 근데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해바라기>가 아니었던 것. 그러니까 십수 년만에 다시 본 <해바라기>는 조금 과장됐다고 여겨졌던 주인공 태식의 마지막 결투씬만 멋진 영화가 아니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완벽했고, 현실성은 다소 부족해도 개연성은 굉장히 높은 수작이었다. 때문에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고, 영화가 끝난 뒤엔 ‘그땐(처음 봤을 땐) 대체 내가 뭘 본 거야’라는 후회와 함께 다시 보면서 진가를 알아보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개봉 당시 내가 그렇게 어설프게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주인공 오태식 역을 맡은 ‘김래원’이라는 배우 때문. 많이들 아시다시피 배우로서 김래원은 2003년 여름을 강타했던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의 경민(김래원) 역할로 단번에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했고, 그 드라마가 종영되고 3년이나 지난 상태였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김래원=이경민’이라는 공식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라리 법대생으로 등장해 귀엽고 능청맞은 역할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경민이라는 캐릭터를 이처럼 좋아했던 탓에 경민과는 완전히 다른 <해바라기>에서의 진지한 역할은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셈이다.

하지만 오랜 만에 <해바라기>를 다시 보면서 뒤늦게 깨닫게 됐다. 김래원이 이 영화로 인생연기 찍었다는 걸. 그때는 다소 어색하게 여겨졌던 어리숙한 태식의 모습은 이젠 첫장면부터 화면 속으로 빠져들게 했고, 한참을 몰입해서 보다가 그땐 보고 쉽게 흘려 버렸던 중요한 설정 하나를 제대로 알게 됐다. 바로 술에 취하면 태식의 전투력이 급상승한다는 것. 다시 말해 그는 ‘취권 고수’였던 것이다. 그걸 감안하니 마지막 20대 1의 결투씬도 개연성이 급상승하더라. 신장개업을 앞둔 나이트 클럽에 불까지 질렀으니 혼자서도 충분히 해볼만 했던 거지. 놈들은 불도 꺼야 하니까. 참, <해바리기>는 한때 동네 양아치로 살았던 극강의 싸움꾼 태식이 막 출소한 뒤 자신을 아들처럼 생각하며 옥바라지를 했던 해바라기 식당 아줌마(김해숙)와 그녀의 딸 희주(허이재)를 지키려는 이야기다. 동네 조폭 두목이자 시의원인 조판수(김병옥) 일당은 재개발을 위해 해바라기 식당을 팔아라고 시도 때도 없이 협박을 하지만 죽은 아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식당을 아줌마는 절대 팔지 않으려 했던 것. 그리고 그런 아줌마의 아들을 태식이 소싯적에 죽였던 것이다. 치고 받고 싸우다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아들을 죽인 놈을 친아들로 삼는 설정도 다소 이해가 안 됐었는데 다시 보면서 딸 희주에게 설명하는 장면에선 이젠 눈물을 찔찔 흘려가며 공감이 되더라. 억울한 심정에 면회를 갔던 아줌마는 아이처럼 울며 잘못했다고 울부짖는 태식의 모습에 위로 받고 아들로 삼기로 했던 것. 그런 아줌마의 엄마 같은 사랑으로 인해 태식은 출소 후 개과천선해 다시는 술도, 싸움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영화든 현실이든 세상 일은 뜻대로 잘 되지 않는 법. 조폭들에 의해 희주의 얼굴에 큰 상처가 생기고 아줌마까지 죽자 결국 태식은 다시 술에 잔뜩 취한 채 복수를 위해 놈들을 찾아가게 된다.

그랬다. 태식의 주목엔 한(恨)이 서려 있었다. 마지막 결투씬을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김래원이라는 배우가 태식의 가슴속 한을 액션에 얼마나 잘 담아냈는지를 여실히 알겠더라. 특히 자신의 얼굴처럼 선 굵은 동작으로 몇몇을 제압한 뒤 그 모든 일을 지시한 두목 조판수가 보이자 그를 향해 몸을 날리며 괴성을 지르는 장면에선 정말이지 전율이 일었다. 남자도 가끔 남자한테 반한다. 오해는 마시길. 취향이 그쪽은 아니니까. 저 여자 댑빵(완전) 좋아하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 이번에 다시 보면서 깨닫게 된 게 하나 더 있다.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에서 전설의 마지막 액션씬이 어쩌면 <해바라기>의 오마주(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일 지도 모른다는 것. <아저씨>의 주인공 이름도 ‘차태식(원빈)’이잖아요. 그렇다면 술에 취한 오태식(김래원)과 전당포 하는 차태식(원빈)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유치뽕이라구요? 그래도 궁금한 걸 어떻해. 히히. 2006년 11월 23일 개봉. 러닝타임 116분.

이상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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