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과 와스프:퀀텀매니아 - 양자역학, 그 미친 세계
앤트맨과 와스프:퀀텀매니아 - 양자역학, 그 미친 세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3.0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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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까지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역학(古典力學)은 ‘결정론’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니까 현재 상태를 알면 미래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건데 특정 시각에 질량이 일정한 대상의 위치와 속도가 정해지면 그 앞뒤의 운동(움직임)을 미리 정할 수 있다고 본다. 굳이 이렇게 학문적으로 설명을 안 해도 축구공이 내리막길을 굴러갈 때 우린 어림잡아서라도 대강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 그렇다. 거시세계에선 이렇듯 나름 단순하다. 그리고 마블의 <어벤져스>시리즈에서 한때 우주 최강 악당으로 군림했던 타노스(조슈 브롤린)가 죽기 전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마블 영화 속 히어로들이 활동하는 영화적 세계관)는 바로 이 고전역학을 기반으로 한다.

헌데 타노스가 죽고 난 뒤부터 마블은 이런 고전역학을 넘어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量子力學)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그 시작은 앤트맨(폴 러드)의 존재 때문으로 타노스에 의해 우주 생명체 절반이 사라졌을 때 그의 활약으로 타임머신 개발이 가능했던 것. 핌 입자를 통해 신체 크기를 자유자재 조절할 수 있었던 앤트맨은 몸집을 줄여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결정론이 지배하는 거시세계와 달리 확률이 지배하는 예측 불가능한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점을 이용해 타임머신을 개발, 슬픈 현재를 바꿀 수 있었다.

일단 여기까진 좋았다.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죽은 스파이더맨과 완다 등을 되살리는 명분으로는 나름 괜찮았던 것. 사실 영화상에서 타임머신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투더 퓨쳐>시리즈를 시작으로 흔하디흔했잖은가.

문제는 타임머신에서 멈추지 않고 마블이 영화 소재로는 아직 생소한 ‘양자역학(量子力學)’을 깊이 건드리고 있다는 것. 타노스가 죽은 뒤 2021년 12월에 개봉한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에서부터 비롯된 다중우주론도 사실 양자역학에 기인하고 있는데 이듬해 5월에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이 다중우주론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 설마설마했는데 이번 <앤트맨과 와스프:퀀텀매니아>에선 결국 양자역학까지 파고 들어가 버리더라. 무슨 물리학 홍보영화도 아니고, 아직 생소한 양자역학이 본격 등장하면서 지금 많은 마블 팬들 사이에선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차라리 타노스나 다시 살려내라고. 그렇다. 마블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가 원래 그렇다. 완전 미쳤거든.

어느 정도나 미쳤냐면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리차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했었다. 왜냐?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거시세계와 달리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전자(電子)’는 완전 유령 같거든.

일단 전자는 측정이 불가하다. 전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소립자는 측정을 위해 ‘본다’는 행위 자체가 전자에 영향을 줘 보는 즉시 움직여버리기 때문. 무슨 말이냐면 거시세계에서 우리가 축구공을 본다고 공이 움직이진 않는다. 하지만 미시세계에선 전자의 운동량을 측정하기 위해 보는 순간 빛이라는 광자(光子)가 전자를 튕겨버리게 된다. 이게 바로 양자역학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로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허나 이건 새발의 피다. 지구가 태양을 돌 듯 원자핵을 도는 전자의 움직임은 더 골 때린다. 지구와 달리 전자는 일정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할 수가 있는데 이때 별도의 이동경로 없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식으로 이동한다. 그러니까 지구가 갑자기 사라진 뒤 목성 궤도에서 출현한 것과 같은 것. 이걸 ‘양자도약(量子跳躍)’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다. 1개의 전자는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도 있다. 분신술(양자중첩:量子重疊)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지금 SF소설 쓰냐고요? 미안하지만 이런 전자의 특성을 토대로 하는 학문이 바로 공대가 있는 대학교면 꼭 있는 ‘전자공학(電子工學)’이다. 또 이렇게 유령 같은 미친 세계가 지금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먹여 살리고 있다. ‘반도체’ 말이다. 아니, 다 떠나 우리 몸도 구성하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전자가 저런 짓을 하고 다닌다고요!

이게 현실이니 이제 마블의 <어벤져스>시리즈는 이런 양자역학의 세계를 알아야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된다. 해서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가능성(확률)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전자가 분신술을 쓰듯 수만 명의 앤트맨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에선 전율을 느꼈었다.

예전부터 관심이 많아 양자역학을 제법 찾아봤었는데 솔직히 난 이제 고전역학보다 양자역학이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지구를 원자핵이라고 보면 인간은 전자 같은 것.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질 않나, 기분이라는 건 좋다가 삽시간에 나빠지질 않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동시에 터지기도 한다.

나만 해도 2005년 그해, 서울 종로 길바닥에서 잠시 노점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접고 난 뒤 얼떨결에 기자가 됐고 그랬더니 불과 몇 개월 뒤 저녁 자리에서 국회의원이 옆에 앉아있더라. 전부 양자도약 같은 게 아니고 뭘까.

이번 영화에서 앤트맨도 습관처럼 말하더라. “(범죄자였던) 내가 이렇게 어벤져스 팀원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인생은 알 수가 없다.” 뭐? 예측 가능? 웃기고 있네.

2023년 2월 15일 개봉. 러닝타임 124분.

이상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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