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줬으면 그만이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2.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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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으면 그만이지』는 김장하 어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다큐 <어른 김장하>와 같은 시기에 김주완 기자가 ‘허락받지 못한 취재기’를 낸 것이다. 어쩌다가 ‘어른’이라는 호칭을 감히 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을 마주할 때가 많은 탓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는 다큐 영상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담고 있다. 나는 책을 보자마자 서둘러 읽다가 한꺼번에 다 읽기가 너무 아까워서 일주일 동안 조금씩 나눠서 곱씹어가며 읽었다.

책장 한 장 한 장이 다 감동이었고, 아름다웠다. ‘생애, 전달식 없는 장학금, 학교 설립과 헌납, 공동체를 치유하다, 김장하의 기질과 철학, 줬으면 그만이지’ 등 여섯 꼭지 안에 마흔한 개의 작은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는 자기 자신과 정치후원금 내는 일에는 인색했지만 필요한 나눔에는 늘 넉넉하였음을 담고 있다. “똥을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되어 꽃을, 씨앗을 맺는다. 돈도 이와 마찬가지다”라는 말은 돈에 관한 그의 철학과 고스란히 포개지는 말이다.

진주는 서부경남의 중심지이다. 김장하 어른이 출연한 남성문화재단 지원으로 출간된 ‘진주문화를 찾아서’ 시리즈 23권이 연차적으로 출간되었다. 진주의 정신과 문화를 옹골지게 담아내었다. 임란 때의 두 차례에 걸친 진주성 전투의 결사정신, 올해로 형평사운동 100주년이 되는 평등정신, 남명 조식의 경의(敬義)정신 등 특징지을 수 있는 문화의 뿌리가 깊은 곳이 진주이다. 혹자는 진주에 김장하 어른과 경상대학교가 있어서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도 한다.

이 어른의 이력을 보면 깜짝 놀란다. 진주신문, 진주환경운동연합,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경상대발전후원회, 남명학관건립추진위원회, 지리산살리기, 진주오광대보존회, 남성문화재단 등 수많은 단체의 후원 대표를 맡았다. 자신이 드러나는 걸 극히 싫어했지만 공동선을 위한 일에는 항상 주머니가 열려 있었다. 아픈 사람을 상대로 번 돈을 참으로 가치 있게 썼다. 검이불루(儉而不陋), 그의 검소는 누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면서 최상의 선(善)을 행한 것이다.

그래서 김 기자는 책 제목을 『줬으면 그만이지』로 정한 듯하다. 어느 스님이 눈보라 치던 겨울날 고갯마루를 넘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거지를 만난다. 곧장 얼어 죽을 듯한 모습이어서 스님은 큰마음 먹고 외투를 벗어준다. 그 걸인은 당연한 듯이 받아 입고는 그냥 간다. 성질이 난 스님이 “여보시오,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는 해야 할 것 아니오?”라고 말했더니 걸인은 태연하게 “줬으면 그만이지 뭘 칭찬을 되돌려 받겠다는 것이오?”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스님은 무릎을 탁 친다.

앞의 글은 김장하 어른이 ‘나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때 인용한 이야기이다. 사람의 탐욕은 쉽게 제어되지 않는 법인데, 이 어른은 이를 담담하게 이겨내었다. 함부로 쓰지 않고 아낀 돈을 귀한 자리에 썼다. 한약방을 접으면서 마지막으로 남성문화재단의 30억 원 재산을 경상대학교에 기부했다. 그것은 곧 스님이 깨달았다는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처럼 무한 보시(普施, 布施)였을 뿐이었다.

진주 시민사회는 김장하 어른을 위한 보은의 자리를 만들었다. 2019년 초에 120여 명이 주인공 몰래 생일 축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시민아트홀은 온통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 행사를 기획했던 분들은 시민의 이름으로 행사의 의미를 짚으면서 김장하 어른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했다. 김장하 장학생 출신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이 어른을 닮아가겠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세세히 표현된 장면들이 모두 감동으로 읽혀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김장하 어른이 빚어낸 아름다운 장면들이었다.

김장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 어르신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장했다. 지역사회 구석구석에 귀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있다. 어려운 학생들을 아낌없이 지원했고, 예술인들과 소외된 곳에 아낌없이 후원한 덕분이다. ‘김장하식’ 돈 쓰는 방식이었고, 나눔이었다. 이 어른이야말로 참으로 지혜의 샘물이었고, 무욕(無欲)의 삶을 실천한 분이다. 그럼에도 여든의 어르신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고 한마디 던질 뿐이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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