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든다는 일은 무궁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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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2.2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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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고잉 화이트?엄마의 작품 / 김라영

1. going white, 늙어가는 게 아니란다.

제목처럼 하얗게 새어가는 자신 머리칼에 관한 이야기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라고 약속했던 언약에 대한 매듭이 아니다. 중년에 접어들어 자신을 하얗게 피워낸 시간을 담았다. ‘거울’ 앞에서 발견한 세월, 보이는 족족 한 올씩 뽑았건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발각되고 마는 ‘화이트’. 속내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해본다지만 속상함은 감출 수 없다. 담담(淡淡)을 가장한 속쓰림. 그 속을 앓아가는 세월 통과 중이라는 통증. ‘나를 하얗게 피워내는 중’이라 말하며 나이를 헤아려간다.

그뿐 아니라 환경 문제도 슬쩍 건드리면서 내용을 더 풍성하게 채워뒀다. 시간이 많이 들고 눈이 나빠지고, 가려움과 역한 냄새를 동반하는 염색약도 버린다. 드디어 눈치 볼 필요 없다는 자신감으로 채운 ‘줌마렐라’로 변신에 성공한다.

문장은 길어봐야 넉 줄. 35쪽에 불과한 책이지만 다 읽고 보고 덮으면 갱년기, 주름, 나이… 이런 단어에 절망하지는 않는다. 린넨(linen) 천에 한땀 한땀 수를 놓아 마침내 자신 얼굴을 당당하게 공개한다. ‘화장을 고치는 여자’가 아니라 여자로서 엄마로서 전진하는 화이트. 간결한 문장은 ‘압권’이며 자수로 표현된 그림은 마음이 벅차오르도록 만드는 ‘압박’이다.

2. 남기고 간 작품은 그리움인 하늘.

슬픔과 그리움은 번지수가 다른듯해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특정 단어를 불러오면 언제나 따라오는 그림자 하나. 건드리면 툭 하고 눈물방울부터 떨어지는 이름, ‘엄마’. 잊고 있었던 모든 것이 튀어나온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 자리 안 계심이 확인되면 더 그러하다. 우연히 앨범이나 옷장 정리를 하다가 아니,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비 내리는 창가에 섰다가…….

이 작품집은 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틈틈이 그리고 만들었다. 그 어머니는 이제 하늘나라로 주소를 옮겼고 그녀는 종종 하늘을 쳐다본다. 다양한 모습을 한 이 작품은 ‘하늘’이라고 읽고 ‘천국’(heaven)이라 믿는 마음이자 밀물이다. 파란 하늘을 그릴 땐 ‘나 보라고 그려주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흐린 날을 그릴 때는 ‘쉬는 날인가?’ 궁금해하며 그림을 그렸다.

‘엄마 작품은 멋져!’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 햇살이 반듯하게 내리쬐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선 하늘을 나는 새, 햇볕 받고 자라는 꽃, 어둠 속에서도 환한 얼굴인 별, 쑥쑥 자라는 나무 등이 등장한다. 사는 도시 얼굴도. 가로등 켜진 밤이 되면 ‘오늘은 엄마도 작품 활동을 쉬는 날’이라 한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했던 추억이다. 마지막 글과 그림은 충분히 예상한 바지만 ‘슬프다’로 말하고 ‘그리움’으로 마무리한다. ‘엄마와 함께했던 모든 것들 때문에 눈물이 났지만, 그런 추억들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살며시 놓아둔 하얀 국화 한 송이는 ‘엔딩’이다.

그녀는 스스로 화가라고 말하길 손사래 치지만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해 가치를 높이는 일을 끊임없이 하는 소위 ‘업사이클링 아티스트’다(영화배우 공효진 씨도 이런 작업을 한다).

‘고잉 화이트’와 ‘엄마의 작품’. 두 책 모두 그림책 전문 도서관인 광주 이야기꽃 도서관 특화 프로그램 결과물이다. 정식 출간된 바는 없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건대 그녀는 앞으로 자주 캔버스를 펼칠 게 분명하다. 쓰고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인스타그램에서 ‘꽃마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리는 작품마다 감탄하는 이들이 많다. 공감을 부추기는 섬세함과 다정함이 장착되어 있어서다.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유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 심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당부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일을 만들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을 하든 사이펀 (siphon)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수용시키는 능력이 있는 이다. 그녀 작품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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