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 속에서 한국 찾기 - ‘우에노 공원’
칼럼 일본 속에서 한국 찾기 - ‘우에노 공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2.1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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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의 우에노 공원은 일본에서 오래된 공원 중 하나로 1873년에 개장했다. 도쿄국립박물관, 국립과학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 등 여섯 개의 박물관이 있어 일본의 예술과 과학을 엿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야구장, 보트장, 도쿄대학 등 다양한 시설로 하루종일 볼거리를 제공한다. 우에노 공원을 방문하면서 제일 관심이 간 것은 이곳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는 일이었다.

먼저 발견한 것은 관음당 인근에 있는 ‘왕인박사비(王仁博士碑)’였다. 사실 모르고 갔기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비(碑)가 2개인데 하나는 기념비였고, 다른 하나는 건립 경위를 적은 비였다. 이 비에는 4세기 말 전라남도에서 태어난 왕인 박사가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충신효제(忠信孝悌)’를 가르치고 일본에 아스카문화를 꽃피우게 한 학자로서 공자에 비유되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등장하는 왕인 박사를 모시는 사당인 ‘다카이시 신사(高石神社)’가 오사카부에 있다고 한다. 927년 일본 왕실에서 편찬한 고문헌 『神名帳(신메이쵸오)』와 사당에 게시된 ‘유서략기(由緖略記)’를 보면 이 사당이 예전부터 ‘국가 사당’의 지위를 지니고 왕인 박사를 모셔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왕인 박사에 대해 뚜렷한 역사적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일본 전역에는 왕인 박사를 기리는 유적지나 신사가 오사카, 도쿄 등 30곳에 달할 만큼 곳곳에 있다. 특히 왕인을 모시는 신사는 시험 기도처로 주목을 받아 시험 철이면 학부모들이 대거 몰려와 합격 기원 기도를 올릴 만큼 ‘학문의 신’으로도 통한다고 한다.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에노 공원 북쪽 끝에는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도쿄국립박물관이 있다. 작년이 창립 150주년이어서 행사가 많았다. 본관은 일본의 미술품이 시대별·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안에서 이동 중 테라스로 나가는 곳이 있었다. 불빛 밑에서 혹시나 놓칠까 봐 계속 부릅떴던 눈이 피로하기도 하고 상쾌한 공기가 필요해서 밖으로 나갔다. 옛 칸에이지 정원을 복원한 정원에는 작은 연못을 둘러싼 나무들이 많아 시원해 보였다.

‘호류지 보물관’은 도쿄박물관 구석에 박힌 작은 건물이다. 메이지 시대에 호류지(法隆寺·법륭사)에서 천황가에 헌납한 보물을 전시하려고 유명한 건축가 타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해서 지었다. 외관이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의 방주교회와 비슷했다. 1층에는 불상을, 2층에는 불상과 금속공예품을 전시하는데 그렇게 많은 불상을 한꺼번에 본 적이 없어서 실로 경이로웠다.

본관 오른쪽 ‘동양관’에는 중국 유물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5층에 전시된 한반도 유물은 대부분이 ‘오구라 컬렉션’으로, 1908년 대구에서 재산을 축적한 일본인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수집한 문화재들이다. 광복 후 오구라의 수집품 수백 점을 회수하긴 했지만 가치가 높은 문화재는 이미 일본으로 반출한 뒤였다. 오구라가 사망한 뒤 아들이 소장품 1천40점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고, 일본 정부는 이들 유물의 일부를 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오구라 컬렉션은 1960년대 일본에서 한국 문화재 귀환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반환 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개인이 수집한 유물이라는 이유로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오구라 수집품 일부가 도굴품인 건 사실이지만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모든 한국 문화재가 오구라 컬렉션은 아니다. 양산부부총 출토 유물처럼 다른 경로로 반출된 문화재도 있긴 하다.

고려 ‘무신의 난’을 평정한 최충헌의 묘지(墓誌)도 처음 봤다. 말의 갑옷 같은 전투용 말갖춤, 동물 모양의 식판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우리의 문화재가 많이 있는데 ‘중요문화재’라고 빨간 도장이 찍혀 있다. 동양관 앞 잔디에 서 있는 우리의 문관상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씁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의 문이 열리면서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일본 곳곳에는 우리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관광지, 맛집도 좋지만,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왕인 박사 안내판이 우리의 끈질긴 요구로 설치되긴 했으나 찾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해외 관광지에서도 우리의 흔적 찾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작가, 여행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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