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라는 나라
‘튀르키예’라는 나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2.0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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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지구촌이 숙연한 분위기다. 7일 기준, 사망자만 4천 명이 넘는 ‘튀르키예 강진’ 탓이다. 국내에서는 궁금증도 불홍수를 이룬다. “튀르키예가 어떤 나라지?”

낯선 건 당연할 수도 있다. 나라 이름표를 바꿔 단 것이 2021년 12월이고, 국제연합(UN) 승인을 받은 것이 지난해 6월이니 안 그렇겠는가. 그렇다면 옛날 국호(國號)는? 지중해의 동북쪽에 연한 나라, 중국어로 ‘토이기(土耳其)’라 불렀던 영어식 호칭 ‘터키(Turkey)’가 바로 그 나라다. 한국을 ‘형제의 나라(Brother’s country’로 여기는 ‘6·25 혈맹’이기도 하다.

달라진 공식 명칭은 ‘튀르키예공화국(Republic of Turkiye)’. 여기서 튀르키예(Turkiye)는 ‘튀르크인의 땅’을 의미한다. 국토는 785,347㎢로 엄청나게 너르고(남한 100,364㎢의 약 7.8배), 인구는 2022년 기준 8천534만1천명으로, 남한 인구(5천162만8천명)의 약 1.6배에 이른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인종적 뿌리는 몽골계 유목민인 ‘돌궐(突厥, Gokturk)족’, 바꿔 말해 ‘투르크(Turk)족’이라는 학설이 주류를 이룬다. 한 누리꾼은, 지난날 돌궐이 기세등등하던 시절, 고구려-돌궐 연합군이 당나라군과 싸웠던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또 그 무렵 두 나라 사이는 고구려 연개소문 장군이 돌궐 공주와 혼인을 맺을 정도로 끈끈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실제로, 돌궐과 고구려의 교류를 뒷받침할만한 비문(퀼테긴비=闕特勤碑)이 1890년대에 몽골의 오르혼 강가에서 발견된 일이 있었다.

‘돌궐’에 대해 우리 역사책들은 대충 훑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튀르키예 사람들은 다르다. 돌궐의 역사를 진지하고 깊숙하게 배우고 돌궐을 ‘조상의 나라’로 여기면서 그 뿌리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국호의 변천 과정을 그들은 돌궐→투르크→터키→투르키예로 기억한다.

근대에 와서도 그들은 역사책에서 배운 덕분인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받아들인다. 6·25 한국전쟁 당시 전투병을 보낸 16개 UN 참전국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병력(1만5천 명)을 파견하고 두 번째로 많은 전사자(3천500명)를 낸 사실에서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했고,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

그러나 사이버 공간의 일부 글에서는 국내에 ‘반(反) 투르키예’ 감정이 식지 않고 있다는 느낌도 이따금 받는다. 종교적 편견 탓인지도 모른다. ‘한국 이슬람의 씨앗’을 ‘한국전쟁 때 파병된 터키군’이 뿌렸다는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투르키예 사람 대부분은 코리안(Korean)을 ‘형제의 나라 사람들’로 예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BS의 <세계테마기행>이나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그런 장면을 종종 접한다.

그런데 뜻밖의 변고가 일어났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같은 투르키예 사람들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규모 7.8의 강진(强震) 때문에 고난의 늪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금은 수천을 헤아리고 있다. 그들의 참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있을까.

2002 월드컵 때의 일을 떠올린 누리꾼이 있었다.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에서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글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갔다. 하이라이트는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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