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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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2.0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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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하는데, 올해는 나 자신과 굳게 약속을 했다. 집안을 정리·정돈하며 그것을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물건을 찾을 때 가끔 이런 일이 있었다. ‘분명 여기에다 둔 것 같은데, 이상하네. 도대체 어디 있지?’ 하며 필요한 물건을 찾아 헤매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끝내 찾지 못해 다시 사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물건을 제때 갈무리하지 않은 나 자신을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정리·정돈을 실천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건 냉장고도 마찬가지였다. 냉동실에 보관한 식재료 하나 찾으려고 문을 여는 순간, 냉동보관 중인 음식이 쏟아져 발등을 덮칠 뻔한 적도 있었다. 한 가지를 찾으려고 해도 이곳저곳 서랍을 열어본 후에 겨우 꺼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정리·정돈’을 외쳐보지만 마음뿐이었다.

지금은 모든 음식과 식재료를 잘 분류해서 어떤 게 들어있는지 냉장고 문에도 붙여놓고, 안쪽 서랍에도 보관 중인 음식과 날짜를 써놓았다. 그랬더니 찾는 시간도 절약되고 못 찾아서 이중으로 사들이는 일도 없어졌다.

한때 필요할 것 같아서 샀지만 현재는 필요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 물건은 많이 쌓아 놓을 게 아니라 정말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겨놓고 그 외엔 모두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비싼 가격에 산 것이어서 버리기 아깝고 보관해 두면 언젠가 쓰일 것 같아서, 혹은 지인이 준 선물이라 버리기 망설였던 것들을 과감하게 하나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기증도 안 되지만 나의 열정과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누렇게 빛바랜 책들도 넓은 공간을 확보한답시고 몇 박스나 재활용 감으로 내놓았다. 버릴 때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내놓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정리도 습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한 군데씩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건을 버리는 기준은 내가 좋아하고 추억이 담겨있는지보다 현재 사용하는 물건인지, 또는 앞으로 유용한 것인지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조찬회의 때문에 샛별을 보며 출근한다. 하루종일 업무에 열중하다가 퇴근하면 집이 가장 편안한 쉼터가 되어야 하는데, 난 그동안 남편이 만족스러워할 만한 편안한 보금자리를 준비하지 못했었다. 그건 때로 부부간 말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좀 더 정리·정돈을 잘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겉으로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며 하며 오히려 더 큰소리를 내곤 했던 나 자신이 이제 와 생각하니 참 부끄럽다. 오랜 세월 인내하고 기다려준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은 집안이 전보다 더 가지런해져서 남편이 집에서 쉴 때 표정이 더 밝아진 것 같다. 정리·정돈을 잘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에도 진심이 느껴진다.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그렇게 표현해주니 남편이 참 곰살궂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정돈을 평소에 생활화하니 집안에 빈자리가 생기고,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는듯하다. 겨울 햇살이 거실 안까지 놀러 오는 따사로운 공간에 앉아 나의 반려식물 행운목을 바라보며 시집 한 권을 펼쳐본다. 아! 참 평온하다. 갱년기 탓인지 토끼잠을 잘 때가 많았는데 요즘엔 단잠을 잘 때가 더 많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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