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뀔까?
- 252-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뀔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2.0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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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후배로부터 톡이 왔다. “선배님, 혹시 개명(改名)하셨나요?” “맞아요. 전○○이었슴다”라 했더니, “어쩐지” 한다. 대학동문회 송년 행사에서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상했는데 이를 총동문회 회보에 올리려다 빚어진 해프닝이다. 문득 2000년 봄의 일이 생각났다. 2000년 3월, 마흔에 둘째를 얻었다. 이 녀석도 첫째 아이랑 마찬가지로 제왕절개수술을 해서 낳았는데, 문제는 이 녀석이 퇴원한 뒤에 일어났다. 녀석이 젖도 안 먹고 계속 설사만 해댔다. 이삼일 만에 그 작은 신생아가 반쪽이 됐다.

인근에서 제일 잘 한다는 대학병원 소아과 선생을 수소문하고 부리나케 찾아갔다. 나이 지긋한 소아과 선생이 녀석을 보더니 “이 지경이 되도록 뭐 했어?” 타박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를 안고 인큐베이터실로 뛰어간다. 그리곤 손수 아이의 이마에 직접 링거를 꽂는 게 아닌가. 그리고 한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같이 달려갔던 장모님이 “자네, 저 아이 잘못될 수도 있는데, 이름이라도 지어줘야 할 것 아닌가?” 경황 중에도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다음날 바로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 있는 작명소에 갔다. 아이 안위를 위해서라도 이 정도 수고는 기꺼이 감수할 작정이었다.

오전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그득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내실로 들어갔다. 두 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앞 팀은 중년의 어머니와 이십대 중반의 아들이었다. 두 사람의 사주를 받아보더니 작명가 선생이 어머니한테 호통을 친다. “당신 아들은 전혀 능력이 안 되는 아이인데, 애한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기대를 접고 편히 살아. 개명해도 안 되는 아이야.” 그다음은 서른 초반의 신체 건장한 남성이었다. 사주를 보더니 역시 대뜸 언성을 높인다. “너는 지금 하던 거나 해. 지금 돈놀이 같은 거 하잖아. 넌 이게 딱이야. 딴 생각하지 말고 이 일이나 계속해” 하는 거다. 괜히 긴장됐다.

나와 아내의 사주를 보더니, 쓱 쳐다본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아이는 걱정할 필요 없어. 얘는 백 살까지는 살 아이야. 문제는 자네 이름이야. 자네 이름부터 바꿔야 해” 기가 찼다. “사십 평생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는데요.” “자네 혼자 살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자네 이름 때문에 와이프랑 아이들이 아픈 거야.”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결혼한 이후 아내랑 큰 아이가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다녔고, 매년 의료비만 수백만원 지출됐을 정도다.

그날 내 이름을 먼저 개명해 받고, 이어 막내 녀석 이름도 받았다. 막내 녀석 이름에도 작은 에피소드가 있다. 선생이 대뜸 묻는다. “돌림자인 상(相)을 쓰면 애가 술을 잘 못 해.” “그럼 어떻게 할까요?” “돌림자를 쓰지 말고 물 수(水)가 들어간 호(浩)를 써.” 술을 좋아하는 내가 아들이랑 술은 해야겠다는 얄팍한 생각에 ‘호’자가 들어간 이름을 덥석 받아왔다. 사실 빠뜨린 게 하나 있다. “자네는 공부를 하지 말았어야 해. 그랬으면 큰 갑부가 됐을 거야. 그리고 사주에 사업운도 들어있어. 그래서 이름을 바꿔야 해.”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까, 반은 맞은 것 같다. 개명 이후, 가족들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나머지 반은 틀렸다. 사업할 건은 맞았는데, 전혀 돈을 벌지 못했으니까. 확률적으로 평균인 셈이다. 나는 과학을 전공했고 자존감도 높은 편이다. 개명도 가족 건강을 위해 마지못해 한 것이지, 개명이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건 전혀 믿지 않는다. 21세기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미신이 성행하고, 많은 사람이 따른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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