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초등학교 옆에 44층 초고층 주상복합?
[기자수첩]초등학교 옆에 44층 초고층 주상복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1.29 1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조권이 더 좋아질 겁니다.”

지난 27일 학교 옆 초고층 주상복합 신축 관련 학부모 설명회에서 나온 시행사 측 설명이다.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실시간 대기질 모니터링과 저소음 장비 사용 등으로 비산먼지, 소음 문제도 없단다.

지난해 10월 남구 신정초등학교 옆 44층 주상복합 건립사업이 울산시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오는 5월 착공, 2026년 12월 준공 예정으로, 사업지가 교육환경보호구역이라 울산시교육청에 교육환경평가서가 접수되면서 이 소식이 알려졌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안전권, 건강권, 학습권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업지와 학교 후문과의 거리가 10m도 채 되지 않는 데다 4년이란 긴 공사기간 동안 소음과 비산먼지에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는 것은 물론 불안전한 통학 환경에 내내 가슴 졸여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155m란 이 일대 최고 높이의 건물이어서 일조권 침해도 피해갈 수 없다. 이날 시행사 측은 오전 8시~11시까지 일조 환경 사업시행 전·후를 비교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정주 여건이 개선되고 일조권도 좋아질 것이라고 안내해 거센 반발을 샀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주 여건 개선인 걸까?

지난해 울산에서는 유난히 시 건축심의위원회가 많이 열렸다. 3년 전만 해도 연 10회 정도였던 것이 2021년 16회, 지난해는 21회까지 급증했다. 심의 결과를 보면 태화로터리와 공업탑로터리 사이 봉월로 일대에 주상복합이 무분별하게 개발됨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왕복 5차선 봉월로의 과부하는 불 보듯 뻔한 상황.

그런 가운데 시행사 측 설명에 따르면 학생 통학 안전을 위해 공사차량 진출입로를 봉월로 대로변에 설치한다. 대형공사 차량으로 인한 교통혼잡과 차량통행 방해 등 민원 발생 소지가 다분한 부분이다.

그런데 또 주상복합 주차장과 연결되는 출입구 2곳은 학교 후문 쪽에 만든다. 폭 5m 이면도로가 있는 후문 주변은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문구사와 학원 밀집 구역이자 스쿨존이다.

오피스텔 포함 256세대의 차량 출입구가 들어서면 통행 차량이 늘어 아이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빌딩풍도 우려하고 있다.

2017년 부산 해운대초등학교 서쪽 36층 주상복합 건립사업의 건축허가가 구청에서 반려된 사례가 있다. 일반상업지역이라는 이유로 시행사는 법적 하자가 없다며 행정심판,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으나 법원에서 패소했다. ‘공공복리’를 우선한 구청의 손을 들어준 것. 현재 이곳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내세운 20층 공동주택이 들어섰다.

초저출산 시대에 정부와 지자체는 부모급여에다 산후조리비, 임산부 교통비까지 지원하며 출산율 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진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현금성 지원보다 자녀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대한민국 부모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날 설명회에선 울산시도 남구청도, 골목정치를 한다는 시의원도 구의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곧 해당 사안을 다루는 교육환경평가 위원회가 시교육청에서 열린다. 교육환경평가는 현장 한번 나와 보지 않고 진행된 시 교통영향평가와 건축심의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법만 따져서 시행사의 개발이익으로만 돌아가지 않도록 지역 사회의 관심이 많이 모아지길 바래본다.

김원경 사회부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