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내 인생 최고의 선물
-251- 내 인생 최고의 선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1.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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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겠지만, 기성세대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해서 좋은 배필을 만나 아들딸 낳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인생 후반부에는 작을지언정 소일거리가 있어 출근만 할 수 있기를 원하기도 한다. 출근은 차치하고라도, 무릎 관절이 튼튼해서 자기 발로 걸을 수만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앞만 보고 숨 가쁘게 살아온 지 오래다. 주어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머릿속은 항시 멀티 프로세스가 돌아간다. 최근엔 조금씩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결하려고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어진 현안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번 겨울은 어느 해보다도 추위가 심하다. 겨울 한파가 유난히도 매섭게 시작된다.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 산이 정겹게 느껴졌다. 세상사 모든 것을 떨쳐내며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고, 결국 봄에 새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다. 공간의 여백이 있고 고독을 이겨내며 생명을 이어가는 겨울나무에서 인생의 진 맛을 느낀다.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무성한 잎을,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는 뼈만 남은 몸체로 고독을 이겨내며 내년을 기약한다.

눈이 선물한 설경을 구경삼아 아내랑 옛날에 서울 근교에 살았던 곳에 다녀왔다. 25년 전 오래된 일이다. 분당 집을 처분하고 남양주로 이사했다. IMF 여파로 기름값은 리터당 2000원을 상회했다. 근무지가 수원이라 톨게이트비와 기름값으로 하루 출퇴근 비용 2만원은 부담이 컸다. 하루에 두 번은 분당을 거쳐야 하는데, 지나칠 때마다 이사 간 것을 후회하며 상심이 컸다. 경춘가도를 달려 그 당시 살았던 남양주 창현신도시로 향한다. “어디를 가냐?”고 묻기에 “그냥 가면 안다”고 대답했지만, 아내도 눈치를 채고는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고 한다. 남양주로의 이사는 ‘사서 고생한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건이었다.

그 당시 살던 남양주 아파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두 사람은 12층에 살았던 것은 기억나는데, 어느 동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동인지 저 동인지 서로가 엇갈릴 뿐이다. 당시의 어려운 상황으로 의도적으로 잊어버린 것이 맞을 듯하다.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가 않았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가끔 저녁이면 차를 마시러 갔던 북한강 주변 카페들을 옆에 두고 달린다. 지나다 보니 곳곳에 익숙한 가게들이 남아 있으나 그냥 지나친다. 말없이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이가 든 지금은 만남도 헤어짐도 쉽지가 않다.

작년 초에 몇 년간 정들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모든 시간을 원점으로 돌렸다. 익숙했던 시간이 낯설어지고, 정든 사람과의 이별 아닌 이별이 되었다. 나는 과연 지금 올바른 길로 가는 걸까. 수많은 밤을 홀로 지새우며 고민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되새기며 홀연히 떠나왔다.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봄 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에는 정말로 몰랐다. 만약에 누군가 다시 젊음을 준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살아온 인생이 너무 힘들어 나이 든 지금이 행복하다.

지는 해 함께 쳐다보며 아무 말 없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하나만 있다면, 그것이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그동안 소홀했던 지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새해부터 새롭게 힘내어 지난 시간을 되돌리고자 다짐한다. 나의 나태함에 죽비를 내린다. 산산조각이면 어떠리. 그대로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련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선물을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김영균 이정 관세법인 대표, 前 울산세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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