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축원’보다 ‘실천’을
새해엔 ‘축원’보다 ‘실천’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1.16 2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천은 밤과 낮을 쉬지 않고 흐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라는 말이 있듯 새해가 밝은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결심이 사흘을 못 간다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에 빗댄다면 이미 시작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을 법하다.

울산에서 해가 뜨는 시각도 1월 16일 07시 31분을 기점으로 1분씩 빨라지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니, 까치는 둥우리를 짓는 데 쓰일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다니느라 바쁘다. 하루를 아침 일찍 시작하는 수컷 딱새의 노랫소리는 경쾌한 리듬을 타는 중이다. 겨울이 서서히 멀어지면서 봄이 점차 가까이 다가온다.

이번 주말이면 음력 설날 연휴를 맞이한다. 가족들이 모여 알찬 한 해를 시작하는 다짐의 자리가 곧 마련될 것이다. 때맞춰 의미 있는 세시 덕담을 생각한 끝에, 새해에는 모두 축원에 기대기보다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기로 했다.

축원(祝願)과 실천(實踐)은 엄연히 다르다. 축원은 비는 대상에게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이지만, 실천은 실제로 행동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축원이 입으로 기대는 행위라면 실천은 손과 발을 움직이는 행동이다.

축원에 대한 일화 한 가지. 송(宋)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풀숲에서 뛰어나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히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것을 본 농부는 그 뒤로 일은 안 하고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 앉아서 토끼가 뛰어나오길 기다렸다…. 한비자(韓非子)의 오두편(五?篇)에 전하는 ‘수주대토(守株待兎)’ 이야기다. ‘홍시가 떨어지면 먹으려고 감나무 밑에 누워 입을 벌린다’라는 속담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을 바라는 게으른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필자의 실천사례 하나를 소개하겠다. 필자는 한동안 산 사람의 복을 비는 생축(生祝)과 죽은 영가(靈駕)의 명복(冥福)을 비는 망축(亡祝) 등 불교 축원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초하루뿐 아니라 각종 재일(齋日)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덕분이었다. 십여 년을 축원에 익숙해진 구업(口業)의 삶을 살다 보니 어느새 실천의 신업(身業)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멀어지게 됐다. 축원이 일상이던 반복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갈등은 필자를 무척 힘들고 괴롭게 했다.

새로운 깨달음을 위해 먼 길을 나서는 선재동자(善財童子)처럼 두려움도 없진 않았지만, 고민 끝에 기득권에 안주하는 생활을 내려놓고 과감하게 10년의 실천을 택하기로 했다. 계승된 틀을 고수하는 조직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정성적 실천의 결과물은 2010년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삼호대숲에서 떼까마귀와 백로류의 이소(離巢) 현상과 개체 수를 조사했고, 이 실천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매주 1회씩은 강당·삼호·태화강국가정원·사군탄 지역(2014년)과 선암호수 지역(2015년), 계명 지역(2021년)에서 모두 8건의 조사를 실천하고 있다.

축원은 비를 피하고 추위를 면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예배 행위다. 하지만 실천은 수천 가지 일과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가 쌓이는 과정에서 오로지 발품을 팔며 비와 눈, 추위와 더위를 혼자 견디어내는 인고(忍苦)의 과정이다. 참으로 괴로운 것은 “축원의 삶을 놔두고 왜 사서 저 고생인가?”라며 실천적 삶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등 뒤의 수군거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부정적 수군거림만큼 원자료(raw data, 미가공 데이터)의 축적이 쌓이고 늘어났고, 그 덕분에 이제는 후학들이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의 제공자라는 자부심을 품고 오늘도 어제처럼 정진·실천의 외길을 걷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지혜는 늘어났고, 지식은 쌓여갔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설날 세시 민속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하면 된다’라는 식의 입으로 하는 인문학적 축원에 매달리지 말고 자료도 제시해가며 ‘하니까 되더라’라는 식의 자연과학적 실천의 중요성을 세시 밥상머리의 화젯거리로 삼으라고 감히 권하고자 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