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감독 이야기
시험감독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2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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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조용하다. 쉴새 없이 돌아가는 히터로 공기가 따뜻하다. 조용하고 따뜻한 교실에 가만히 서 있으려니 눈이 절로 감긴다. 반쯤 감기려는 눈을 부릅뜬다. 눈에 힘을 한 번 번쩍 준다. 괜히 교실 앞을 한 바퀴 걸으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필자는 기말고사 감독 중이다.

중학교의 평가는 절대평가다. 전교에서 몇 등인지를 기준으로 나누는 상대평가가 아니다. 각 교과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에 얼마만큼 도달했는지를 측정한다. 그래서 수행평가와 지필고사 점수를 더한 학기 말 환산점수(100점 만점)를 기준으로 A~E 5가지 등급을 매긴다. 예전에는 ‘수우미양가’였는데 요즘에는 ‘A~E’로 매긴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시험 준비령이 울려 감독교사가 교실에 들어가도 여전히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 대체로 마지막까지 서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점검하고 있다. 이제 시험을 시작해야 하니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을 다 치우라고 안내하면 그제서야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한다. 그리고도 아직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가 남아있다. 하지만 OMR 답안지를 나눠주는 순간부터 반에 미묘한 긴장과 정적이 감돈다.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답안지를 뒤로 넘기고 인적 사항을 마킹한다. 다들 그 순간에는 시험을 잘 치기를 바라라고 있을 것이다.

시험지를 받으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시험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시험문제 풀이에 열중한다. 물론 몇몇 아이들은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엎드리기도 한다. 인적 사항과 답을 마킹했는지 확인하러 가보면 정답이 일렬종대로 가지런하다. 수업 시간의 모습이 생각난다. 수업 시간엔 틈만 나면 엎드리고 쉬는 시간이 되면 살아나는 아이였다. 우리 반이 아니라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직은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신기한 점은 이렇게 일렬종대로 문제를 푸는 아이들도 시험 점수는 어느 정도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자신이 푼 문제의 답이 맞는지 확인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자리에 우르르 몰려가서 그 아이의 시험지를 기준으로 답을 맞춰보고 몇 점쯤 받았는지 계산해본다. 그리고 서로 몇 점인지 물어본다.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은 녀석들도 그러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 시험이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아이들은 끝까지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기도 한다.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종료 5분 전에 알림 종이 울린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일단 푼 문제부터 답안지에 마킹하라고 안내한다. 그리고 아직 다 못 푼 아이들이 몇 명쯤 되는지 확인해본다. 대체로 그쯤 되면 문제를 풀고 엎드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끝까지 문제를 푸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에 답안지를 교체해 달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시험 종료 몇 분 전에 답안지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007작전이 이럴까 싶을 만큼 신속하게 교체해주고는 일단 답부터 마킹하라고 알려준다. 보고 있으면 애가 탄다. 너무 서두르다 보면 또 실수하게 되는데 그때는 아이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가득해진다. 때로는 손을 떨기도 한다. 침착하게 답안을 마킹하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무사히 답안을 마킹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시험 종료종이 울릴 때까지 마킹을 다 못하면 아이에게 어떤 답안지를 제출할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 아이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하나를 선택한다.

시험을 출제하는 입장에서는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문제에 오류가 있다면 재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고사 중간에 발견되면 긴급 교과 협의를 통해 오류가 난 부분을 공지하고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기 직전이나 시험이 끝난 다음에 오류가 발견되면 재시험을 쳐야 한다. 그런 경우 한 문항 정도만 다시 치기 때문에 부정행위 감독하는 것이 무척 까다로워진다. 그래서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복도를 돌아다니며 시험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기다리게 된다.

시험의 난이도는 시험 후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복도를 지나가는 교과 선생님들에게 ‘선생님 사랑해요’를 많이 하는 경우 문제가 대체로 쉬운 경우다. 시험을 마치고 엎드리거나 우는 아이들이 있다면 시험 난이도가 크다고 보면 된다. 문제가 어렵게 출제된 경우 요령 있는 해당 교과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가지 않는다. 시험이 어려웠다는 아이들의 애정 어린 원망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한 시간만 지나면 다음 시험 이야기로 가득해져서 괜찮아진다는 것이다. 이번 시험도 문제 오류와 부정행위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다행이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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