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마시고 난 후 다음 날 우리는
한 잔 마시고 난 후 다음 날 우리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2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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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미깡-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술 이야기를 꺼내면 두 부류로 나뉜다. ‘또?’와 ‘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와 얽힌 기억이 나뉘기 때문이다. 그만큼 ‘찬반(贊反)’과 ‘찬밥’ 신세를 모면하기 힘들게 만드는 물성(物性)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술을 빌어와 자신을 기록한 책은 차고 넘친다. 수주 변영로 선생이 쓴 ‘명정(酩酊) 40년’을 비롯 알코올 냄새 진동하는 소설 ‘안녕 주정뱅이’를 쓴 권여선 작가나 시인 김도언 씨 산문집, ‘너희가 혼 술을 아느냐’ 등등 제목만 들어도 어질어질하게 만든다. 그토록 참담한 지경에 이르게 하는 술. 읽기만 해도 취기가 오르니 술꾼들 몫만은 아니다.

이구동성 입을 모아 ‘찬양’하는 술 이야기는 술술 넘어간다. 이토록 깊은 ‘술빨’이라니 감탄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마시는, 마셨던 ‘술’에는 경거망동이나 추태, 되돌이키기 힘든 후회도 깔려있지만 허전하고 슬픈 마음인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가상 인물을 등장시켰으면서도 전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게 만든 ‘술꾼 도시 처녀들’에 이어 드디어 주변 인물들과 함께 마셨던 술을 꺼내든 작가, ‘미깡’. 여기에서는 각종 술과 안주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과음과 숙취’를 건너뛰게 하는 ‘해장 음식’이 차려진다.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술자리에서 벌어진 우울, 심드렁, 해이해진 마음 등을 다스리는 ‘명약’(名藥)이 필요하다. 아침 식전에 술 속을 풀기 위해 술을 조금 마시는 해장술(解?-)이 아니라 ‘음식’이 필요하다.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속 푼다고 또 술잔에 입을 대는 행위는 ‘알코올 중독’임을 증빙하는 꼴이 되니 참아야 한다.

술을 마시면 몸 안, 수분이 빠진다. 술 마신 다음 날 머리가 깨질 듯 아파도 제일 먼저 찾는 게 ‘자리끼’다. 갈증을 해소해야 하는 탓이다. 어젯밤에는 술, 눈뜨면 ‘물’이다. 맹물만 마시는 게 싫어 두리번거리게 되는 ‘해장국’이 안성맞춤이다.

‘면빨’을 건져 먹는 국수나 냉면도 도움이 되지만 술꾼들은 안다. 속 다스리는 최고 해장법을. 작가는 ‘해장’을 지옥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특급열차에 비유한다. ‘금주’(禁酒)를 다짐하게 만드는 한 그릇은 거룩하지만 해가 질 때 생기는 노을을 이르는 만하(晩霞)가 찾아오면 또다시 슬슬 피어오르는 ‘한 잔’ 욕망은 피할 길 없다. ‘그럴지라도’ 해장은 건너뛸 수 없는 의식(儀式)이다.

 

‘개에 물린 상처엔 그 개털을 이용하듯 술은 다른 술로 해결하고 일은 또 다른 일로 해결 하라’는 말이 있듯 해장이라는 핑계 없는 무덤은 이렇게 자꾸 늘어나는 법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추도(追悼)하는 마지막 글을 쓰면서 ‘갈증’을 대신한다. 자신에게 ‘술 스승’이었던 이는 어느 날 죽었다. 아침 해장은 ‘안주’를 대신해 ‘안부’를 묻는 일이고 종종 슬픔을 가라앉히는 애도(哀悼)가 된다.

엊저녁은 분명 ‘함께’했는데 아침은 대부분 ‘혼자’다. 그렇다. 좀처럼 평안(平安)이 찾아오지 않는 지난 밤 ‘필름’을 찾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술자리 즐거움은 아침 괴로움과 동반 관계이지만 그 고통을 통해 무성한 헛된 ‘다짐’을 하더라도 괜찮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중 꼭 필요한 한 가지 일은 술 때문에 망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일에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정도로 여길 일이다.

충혈(充血)은 부끄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법화경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계해야 할 일이 분명하지만 ‘호올로’ 견디는 그 한 잔에 누군가 시비 걸어도 그리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언제나 이유 혹은 변명거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 말이다.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반드시 해장하자. 속도 풀고 마음도 풀고 엉킨 일도 풀어내는 기회를 만들면 된다. 우리는 술 마시며 망가져 가는 게 아니라 날마다 ‘성장통’을 겪고 있을 뿐이다. ‘자, 해장국 한 뚝배기 하실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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