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을 주고받는 문화
인사말을 주고받는 문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2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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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걸맞은 인사말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Merry Chistmas!’, ‘Happy New year!’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의 대표적인 인사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일 것이다. 덕담의 느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대개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항상 건강하십시오!’와 같은 건강 기원이나 상대방의 소원 성취를 비는 희망찬 이야기를 전한다. 한마디로 개별적인 맞춤형 인사말이 전개된다.

이전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서서히 없어졌다. 비용 문제, 발송의 번거로움, 디지털 시대의 도래 등 많이 이유가 있다. 하지만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게 된다. 상대방과 같이했던 한 해를 회상하고 감사를 전하고 다음 해에 대한 희망찬 내용을 담아낸다. 담담하게 쓰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칫 아부나 오글거리는 느낌으로 흐르기도 한다.

지금은 SNS를 통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발신하거나 연하장을 게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콘텐츠 면에서는 이전의 아날로그 감성과는 사뭇 다르다. 상대방에 대한 맞춤형 콘텐츠가 아니어도 된다. SNS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근황 보고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연말연시 인사말을 전해야 한다는 제한성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연하장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일본 우체국은 1949년 이래 연하장을 발매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이 연하장을 구입하여 자신만의 연하장으로 장식을 한다. 인쇄를 하거나, 스탬프를 찍거나, 갖가지 색깔의 문구류로 치장을 하기도 한다. 연하장 발매 수는 2003년에 44억 5천936만 장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1인당 35장꼴이었다. 이것이 2022년에는 1인당 14장꼴로 57%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이 숫자도 꽤 놀랍다.

일본은 이러한 감소추세를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 해 동안 발매된 연하장을 추첨하여 당첨금을 발표하는 이벤트가 있다. 최근에는 연하장 추첨당첨금도 올렸다. 2019년에 발행된 2020년도 연하장부터는 10만 엔에서 30만 엔으로 대폭 올린 것이다.

이렇게 일본인이 연하장 문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체국이 12월 초에 연하장 수거를 개시하면 우체국 등을 통해 연하장 투함이 시작된다. 우체국은 이것을 모아 분류한 다음 1월 1일 새벽에 전국 어디나, 누구에게나 일제히 배달한다. 새해 첫날 문밖 우편함에는 자신을 수신인으로 지정한 연하장이 고무밴드로 묶여 있다. 그 묵직한 두께에서 안도감을 맛보기도 하고 좀 더 타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그 내용을 살펴보며 지인들의 근황을 파악하는 것이 새해의 풍경이었다.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지인에게 근황을 보고하는 도구가 바로 연하장이었다. 연하장에는 자신이 한 해 동안 겪었던 일이나 가족들의 근황까지 소소히 담아낸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학부모가 되었다거나, 20년 다녔던 직장을 퇴직했다거나 하는 내용을 전한다. 이러한 자신의 근황 보고와 함께 상대방에게 감사와 덕담을 전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라는 문구로 마감하며 관계를 이어나갈 결심을 곁들인다는 점이다.

이렇게 열 일을 다 하던 일본의 연하장도 디지털 문화에는 당해낼 수가 없나 보다. 비용과 인쇄 등의 수고스러움, 투함의 번거로움은 접어두더라도 무엇보다 지인의 주소를 알기가 어려워졌다. 최근에는 개인정보를 엄격히 다루고 있어 이전처럼 간단히 주소를 알아낼 수가 없다. 몇 년 전까지는 학교의 연락망, 졸업 앨범, 사원 명부 등에 이름과 함께 주소가 실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현재는 직접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주소를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일본의 연하장 문화는 악조건에 놓여 있다.

한때 우리 문화를 ‘냄비 근성’이라는 말로 비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말 역시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그만큼 시대를 맹목적으로 쫓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우리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럴수록 계속 이어나가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사이에 선택을 종용받는다. 내년에는 모두에게 좋은 한 해가 되길 빌어 본다.

박양순 울산과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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