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기획특집]파이프오르간으로 마주한 조선의 일월오봉도
[창간 15주년 기획특집]파이프오르간으로 마주한 조선의 일월오봉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1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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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수도 울산’과 ‘문화수도 전주’가 맞손 잡으면
⑻국내 유일의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 홍성훈
우리나라 유일의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 홍성훈.
우리나라 유일의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 홍성훈.

◇태평성대를 염원한 ‘일월오봉도’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일월오봉도’는 조선을 건국하고 왕좌에 올랐던 태조 이성계의 뒤 병풍에 그려진 그림이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과 다섯 봉우리의 산, 흘러내리는 폭포, 두 쌍의 적송, 넘실대는 물결과 땅을 소재로 좌우 대칭의 구도를 갖고 있는 그림이다. 양쪽으로 놓인 소나무는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어 주는 존재로서 천(天), 지(地), 인(人)과 삶에 대한 지혜를 알려 준다. 이는 상극의 대치가 아니라 상생의 조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해와 달, 땅과 함께하는 인간과 천지 만물의 조화는 우주 질서의 운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월오봉도에는 조선 500년의 우주관, 생명 사상, 천명사상 등이 오행과 결합한 성리학의 철학이 담겨 있다.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일월오봉도.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일월오봉도.

◇우리 고유의 음악을 창조한 세종대왕

조선왕조의 가장 위대한 세종대왕은 음악적 재능도 남달라서 ‘여민락’이라는 곡을 썼으며 박연을 시켜 편경에 쓰일 돌을 구하도록 명했고, 결국 그 소리에 걸맞은 편경을 만들어낸다. 또한, 악기도감을 설치해 많은 아악기의 제작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편경’과 ‘편종’이다. 실학자 담헌 홍대용(1731~1783)과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을병연행록과 열하일기를 통해 서양악기인 오르겔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홍대용은 중국의 사신으로 건너가 제일 먼저 경험한 것이 중국 북경 성당에 설치되어 있었던 파이프오르간을 접한 것이다. 그 이후, 박지원 또한 중국에서 그 악기를 보고 난 후 정조에게 “성하께서 말씀만 하시면 그들과 똑같은 오르간을 만들겠나이다.”라고 청했다.

당시 종묘에서 행해지는 국가적인 제사 음악에 중국 음악인 ‘아악’이 사용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세종대왕은 “아악은 본래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고 중국 음악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살아생전에는 향악을 듣고, 죽으면 아악을 연주하니 어찌 된 일이냐?”라고 한탄했다. 세종실록 제49권에 실려있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우리 음악은 중국에 비해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향악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여파는 바로 편종, 편경 등의 악기를 직접 제작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우리 정서에 맞는 작곡으로 영역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한 여민락, 취풍형, 치화평 등이 대표적이다.
 

일월오봉도 파이프오르간의 가상 이미지
일월오봉도 파이프오르간의 가상 이미지

◇천상의 악기 ‘생황’

생황은 요즈음도 ‘천상의 악기’라고 표현한다. 옛날에는 공명통을 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포부에 속하는 악기다.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기 위한 악기다. 해인사 명부전 주악비천상은 1873년에 다시 지어졌다. 고구려의 전통이 1200년을 넘어 해인사 승려 장인의 손끝에서 재현되었다. 각각 생(笙), 비파(琵琶), 소(簫), 적(笛), 금(琴) 등 악기의 모습이 보인다. 서기 673년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신라, 고려, 조선의 세종에 이르러 우리 소리(훈민정음)와 우리 악기(내소사 악기 벽화) 및 해인사의 악기 단청 벽화 등을 통해 고구려 벽화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악기들 가운데 순수한 고유 악기는 뜻밖에도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고유 악기로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장고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고, 해금은 몽고 지방의 해족 악기로서 고려 시대에 들어온 것이다. 옛날 서역 세계에 널리 퍼져있던 많은 악기가 우리나라에 들여오면서 우륵이나 왕산악 같은 선인들에 의해서 독창적이고 새로운 악기로 재탄생되면서 우리의 문화를 질적, 양적으로 팽창시킨 것이다.

동이족의 악기 ‘생황’은 피리의 군락으로 만들어진 악기로 대표적인 화음악기다. 당나라 때에 유럽으로 전해졌다고 추측된다. 국보 제106호 아미타불비상에 생황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서기 673년이다. 또한,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에도, 내소사 대웅전 천정의 악기벽화에도 생황을 발견할 수 있다.

충남 연기군 전동면 운주산에서 발견된 국보 106호.
충남 연기군 전동면 운주산에서 발견된 국보 106호.

◇파이프오르간, 대한민국 대표 고급문화 10선에 선정

그로부터 2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손으로 전통의 소리를 이어가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다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오르겔(파이프오르간) 이야기다. 악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오르겔은 신의 음성을 대리하는 악기로 알려져 있듯이, 사람의 목소리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낼 수 없는 경건하고 초월적인 분위기의 선율을 들려준다. 오르겔은 피리들의 군집이며 동시에 움직이는 소리조형물이다. 이는 여러 부품에 생각과 감정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생명체로서 피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하여 연주가, 작곡가 등까지 합세해야 새로운 창조물로서 비로소 오르겔이 빛을 볼 수 있다.

2021년 7월, 한국관광공사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고급문화 10선에 한국 오르겔(파이프오르간) 제작을 선정했다. 이상만 음악평론가는 “오르겔 건축을 한다는 것은 문화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오르겔 제작을 위해서는 그 나라의 자생적 산업의 토대와 지식 인프라의 융합이 없으면 이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오르겔을 제작할 수 있는 국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오르겔 제작이 하나의 건축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인 동시에, 소리조형물인 예술이 융합된 고부가가치 융복합의 산물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홍성훈 마이스터는 1986년 독일로 유학을 가 1987년 목공 마이스터, 1991년 오르겔 바우 국가시험 합격, 1997년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자격 획득을 이루어내고 귀국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오르간 제작회사를 설립한다. 현재까지 21개의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했는데, 대표작으로 국수교회 산수화 오르겔, 홍매화 오르겔, 구로아트벨리 콘서트 입구 벽면 소리조형물 등이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 천정에 새겨진 생황 및 악학궤범에 있는 생황 모습과 연주법.
내소사 대웅보전 천정에 새겨진 생황 및 악학궤범에 있는 생황 모습과 연주법.

 

◇일월오봉도 오르겔의 재탄생

오르겔 제작은 어떤 한 개인의 능력이나 손재주만으로는 달성하기 힘들다. 다양한 재료, 디자인, 예술가, 철, 가죽, 목재, 목공 기술, 메카닉적 이해, 전기, 전자, 모터, 솔레로이드 등 여러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장인들이 하나로 모여야 탄생할 수 있다. 최첨단 기술과 전통이 결합된 오르겔은 편종, 편경 등 10여 가지의 한국적 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 이러한 융합 방식을 통해서 유럽이나 북미의 문화인 오르겔을 우리 고유의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제 조선의 역사와 함께해 온 가장 뛰어난 예술적 작품인 ‘일월오봉도’와 실학자 홍대용이 이름 붙인 ‘대풍금’에 현대기술을 융합하려고 한다. 소리는 그 나라의 언어와 풍경을 닮아간다. 수백 년의 전통을 지켜오며 그들의 자존심과도 같은 유럽의 오르겔이 우리의 소리를 담은 오르겔로 변신한다면, 오르겔은 우리의 ‘혼’을 담은 악기이자 한국화된 악기로 우리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우리나라 오르겔 제작자인 홍성훈의 손을 통하여 일월오봉도 오르겔을 제작하여, 서양 음계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음도 함께 구현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한국화된 파이프오르간은 조선의 일월오봉도의 이념과 가치를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김동철 ㈜온고 대표이사, 前 한국전통문화전당 초대원장

세종의 악기가 담긴 부안 내소사 닫집 벽화.
세종의 악기가 담긴 부안 내소사 닫집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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