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슬기롭지 못한 자동차생활 ‘안녕!’
-254- 슬기롭지 못한 자동차생활 ‘안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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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중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내 취미는 카메라, 오디오, 자동차다. 지금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취미가 자동차생활이다. 자동차생활이란 자동차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늘 생활화하는 것이다. 자동차 잡지를 정기구독하면서 모터쇼가 열리면 아무리 멀어도 달려가고, 자동차 박물관도 일부러 가보며 수시로 자동차 판매전시장에 들락거리는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넘쳐나면 다음 단계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다. 나의 첫차는 H사 프레스토였다. 그것도 형이 한참 타다가 넘겨준 소위 ‘똥차’였다. 이십대 말엽에 그 차를 물려받고는 너무 좋아,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밤새 무탈했나 나가봤다. 차 상태는 너무 후져서 수시로 휠캡이 벗겨져 또르르 굴러다녔고, 비 오는 날 물웅덩이라도 지나가면 시동이 꺼지곤 했다. 3년여 동안 운전하면서 십여 차례나 시동이 꺼졌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결혼하고 한 달쯤 됐을 때다. 혼잡하기로 유명한 사당사거리를 지나는데 장마철이라 물이 흥건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거리를 반도 못 지났는데 시동이 꺼졌다. 그래서 기어를 중립에 넣고 20대 아가씨였던 아내랑 모양새 빠지게 차를 밀어서 도로 밖까지 끄집어냈다. 프레스토 이후에도 한동안은 중고차만 고집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대략 3년 된 차는 신차의 절반 정도였는데, 이 차를 2년 정도 타고 팔아도 신차 값의 40%는 받을 수 있었다. 슬기로운 자동차생활이었다.

갑자기 자동차생활에 변곡점이 생겼다. 2007년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자동차=독일차’라는 등식이 생긴 것이다. 18일간 M사 차를 타다 국산 차를 타니 마치 달구지를 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후로는 독일의 M, B, A, V사의 차를 2~3년 주기로 교체해 타게 되었다. 여유롭지 못한 경제 상황에서도 이런 자동차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신차 같은 중고차를 리스해서 2~3년 타다가 반납하는 등 나름 슬기로운 자동차생활을 영위한 덕분이다. 그런데 50대가 되니 신차만 리스해서 3~5년씩 타는 걸로 패턴을 바꿨다.

올여름의 일이다. 가끔씩 자동차와 관련된 동영상을 보는데, 특정 차가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B사 차를 무척 좋아한다. B사 차만 6대를 소유했었다. 차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막내아들과 인천 영종도에 있는 드라이빙 센터로 그 차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때 실착이 있었다. 모든 남자 취미생활의 공적(共敵)인 아내가 느닷없이 따라나선 것이다. 아들은 흥분해서 차에 시동을 걸며 배기음에 감격하는데, 그 배기음을 뚫고 들리는 파열음, “뭐야! 이 차는 전에 두 번이나 탔던 차잖아.”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예전 차는 2천cc 4기통 디젤엔진과 3천cc 6기통 가솔린엔진 차였고, 이 차는 4천400cc 8기통 가솔린엔진이란 것을.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연말이 가까워지자 내가 봤던 그 차가 폭탄세일이 아닌가. 그것도 특별 에디션으로. 차별되는 외관에 후륜 조향까지 되는 최고 사양의 서스펜션까지 장착됐다. 눈동자가 휘리릭 돌아버렸다. 바로 차를 신청했다. 딱 한 대 남은 차가 운 좋게 계약됐다. 얼마 만에 느끼는 흥분인가. 내연기관차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감하리라는 살 떨리는 흥분도 잠시뿐, 갑자기 터지는 아내의 불호령이 들렸다. “미친 거 아냐? 몇 번이나 탔던 차를 뭐 하러 또 타? 그 돈 있으면 나를 줘.” 이래도 미덥지가 않았는지 출근하는 내 뒤통수에 대고 한 번 더 날린다. “차 계약만 해봐라!” 슬기로운 가정생활을 위해서 슬기롭지 못한 자동차생활을 끝내기로 했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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