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사자성어’
‘새해 사자성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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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라면 인구가 56개월째 내리막길을 걷는 ‘줄어드는 도시’다. 올해 8월 기준 27만5천254명이면 울산광역시 인구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현지 언론은 ‘몇 년 새 호남 3위 도시에서 5위 도시로 추락했다’며 울상이다. 그런 익산시가 ‘계묘년(癸卯年) 새해 사자성어’를 기초·광역지자체 가운데 맨 먼저 확정, 발표해서 주위를 놀라게 한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새해 시정의 길잡이가 될 익산시의 신년 화두(新年話頭)로 ‘이청득심(以聽得心)’이 뽑혔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이란다.

올해 민선 8기를 막 시작한 정헌율 익산시장은 “현장에서 시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민생밀착(民生密着) 소통행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새해에도 이청득심의 자세로 지역의 크고 작은 갈등을 조정하고 현안 사업들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은 고추’론을 논한다면 신우철 군수가 이끄는 전남 완도군과 최기문 시장이 이끄는 경북 영천시도 빼놓을 수 없다. 완도군의 새해 사자성어가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공모 마감일이 15일인 탓이다. 그래도 주제는 ‘그동안 모두 하나 되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완도 발전을 이룩하자’로 미리 정해놓았다. 상금도 있다. 최우수상 1인에게 50만 원, 우수상 3인에게 10만 원씩 준다. 11월 기준 완도군 인구는 고작 4만7천634명. 그 사실에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다.

2022년 11월 기준 인구가 10만1천51명밖에 안 되는 영천시는 같은 시점, 인구 111만1천371명을 헤아리는 울산광역시를 뺨치고도 남는 구석이 있다. 보기에 따라선 훨씬 어른스럽고 의젓해 보이기까지 한다, 새해 사자성어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시민 공모로 뽑아 온 사실과 그런 흉내조차 못 내는 사실이 뚜렷한 대조를 보여 그런 건 아닐까.

2020년에는 ‘시민과 함께 위대한 영천 건설을 이루어 나가자’는 뜻에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신년 화두로 골랐던 영천시가 2021년에는 ‘유지경성(有志竟成=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 2022년에는 ‘호시마주(虎視馬走=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말처럼 힘차게 목표를 향해 달린다)’를 새해 사자성어로 뽑았다. 2023년 공모는 지난 9일 마감했으나 시정조정위원회 심의·의결이 남아있어 아직은 알 수 없다. 인구 면에서 큰 형뻘인 울산광역시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 싶다.

이런저런 흐름을 미루어볼 때, 두 도시의 길고 짧고를 가늠하는 잣대는 ‘부(富)의 크기’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길고 짧고를 가늠하는 잣대란 말인가. 평소에 말수가 적었던 한 지인이 넌지시 일러준다. ‘인문학적 소양의 크기’라고 말이다. 그 순간 갑자기 혼란이 생긴다. 도시의 부로 따지자면, 올해 울산광역시의 순위는 3위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각종 통계와 지표에서 선두주자로 군림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하는 생각에 이르면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다.

키재기에 재미를 붙이다 보니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눈에 띈다. 완도군과 영천시가 약속이나 한 듯 2021년의 새해 사자성어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의미의 ‘유지경성(有志竟成)’을 고른 일이 그것. 이 말을 조금 비틀어 “인문학에 뜻을 두면 반드시 문화도시를 이룬다”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다. 울산광역시 수뇌부에 강력히 권하고 싶은 신년 화두인지도 모른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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