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자성어’
‘올해의 사자성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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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 가까워지면 선물처럼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 선보이는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this year’s four-character idiom)가 그것.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일어난 상징적 현상이 네 글자 속에 담겨 교수신문에 실리니, ‘집단지성의 발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교수신문’은 3개 교수단체가 ‘교수사회를 대변하는 정론지’를 목표로 1992년 4월에 창간한 주간신문이다. 세 교수단체란 △전국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연합회와 △국·공립대학교 교수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를 가리킨다. 이 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매년 연말, 3개 단체 교수들의 투표로 뽑는 만큼 그 권위는 자타가 인정하고도 남는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았으니, 곧 발표될 ‘올해의 사자성어’는 22번째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처음부터 모아두었다가 인터넷에 올리기를 즐기는 분이 더러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혼자서 음미할 것이 아니라 여럿이 공유했으면 하는 이타심(利他心)에서 비롯된 착한 행동이 아닐까. 사실 교수신문이 해마다 고르고 고른 사자성어들은 어느 하나 교훈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2001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 이합집산(離合集散) ▷2003 우왕좌왕(右往左往) ▷2004 당동벌이(黨同伐異) ▷2005 상화하택(上火下澤) ▷2006 밀운불우(密雲不雨) ▷2007 자기기인(自欺欺人) ▷2008 호질기의(護疾忌醫) ▷2009 방기곡경(旁岐曲逕) ▷2010 장두노미(藏頭露尾) ▷2011 엄이도종(掩耳盜鐘) ▷2012 거세개탁(擧世皆濁) ▷2013 도행역시(倒行逆施) ▷2014 지록위마(指鹿爲馬) ▷2015 혼용무도(昏庸無道) ▷2016 군주민수(君舟民水) ▷2017 파사현정(破邪顯正) ▷2018 임중도원(任重道遠) ▷2019 공명지조(共命之鳥) ▷2020 아시타비(我是他非) ▷2021 묘서동처(猫鼠同處).

솔직히 말해 이 21개 사자성어 가운데 눈에 익은 네 글자는 절반도 채 안 된다. 한자를 조금이라도 배웠다는 세대가 그렇다면 이른바 ‘MZ 세대’는 까막눈이나 다름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자 공부도 되고 마음공부도 되니 한 해라도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재미 삼아, 최근 4년 치 사자성어의 뜻이라도 한번 풀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2018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2019 공명지조(共命之鳥)=목숨을 함께하는 새.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같이 생각하지만 실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를 뜻하는 말) △2020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무조건 옳고 남은 무조건 그르다. △묘서동처(猫鼠同處)=쥐와 고양이가 한패가 되다. (부정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는 이와 한패가 되다.) ‘2021년 묘서동처’를 이렇게 풀이하는 이도 있다. ‘곡식을 지켜야 할 고양이가 오히려 쥐보다 더한 도둑질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내친김에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는 원칙도 알고 가도록 하자. 사자성어 후보 추천위원단 구성→설문용 예비후보(사자성어) 심사→교수 대상 설문조사가 그것이다. 별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올해도 이 방식이 그대로 적용될 것이 틀림없다. 남은 것은, 어떤 사자성어가 ‘올해의 사자성어’ 자리에 오를 것인지 알아맞히는 일이다.

호사가 중에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이도 없지 않다. “각자 알아서 제 살길을 찾는다”는 뜻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1위 후보로 점찍는 이도 있다. 갸웃거려지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분이 있다. ‘사자성어의 대가’ 최병국 전 국회의원(16~18대, 울산 남구갑)이 그분이다. 이미지가 떠오른 것은 이분의 대표적 사자성어가 ‘各自圖生’이었기 때문일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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