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을 위한 웰다잉(well-dying)
좋은 삶을 위한 웰다잉(well-dying)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0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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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에서 ‘연명치료(延命治療, 일명 연명의료)’의 고통스러운 과정만 있었던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릴 때가 종종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는 희미해지지만, 늦겨울 석양이 병실에 잿빛으로 차곡차곡 쌓여 오는 공감각(共感覺), 온갖 약품과 땀내와 오물 냄새가 뒤섞인 병실 특유의 냄새, 기도와 연결된 산소 방울의 요동치는 소음, 오감으로 각인된 분절된 짧은 기억은 “삶은 결국 비극인가?” 하는 근원적 의문으로 귀결되곤 했다. 그때부터 죽음이라는 나의 이벤트를 타인에게 위탁하지 않기로 작정했고, 준비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좋은 죽음은 ‘나’의 선택이 분명하게 개입되어야 한다. 자살과 같은 수단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죽음 앞에서 잘 살아온 삶에 어울리는, 존엄한 나의 마지막을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대다수 사람이 ‘좋은 죽음’이란 ‘고통 없이 잠들 듯 맞이하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0명 중 8~9명은 아마도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순간 나의 삶은 담당의의 판단으로 넘어간다. 당연하게도 의사는 직무상 최대한의 연명에 최선을 다할 것이므로 나는 회복 불능 상태에서 생리적 기관이 정지될 때까지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소모적 연명치료를 받지 않기 위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등록기관에 제출하면 본인의 의지가 반영된 합법적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 가까운 보건소 등이 등록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상담을 받아보면 좋을 것이다.

나의 죽음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결정하고 나자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시험으로 시작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돈을 벌기 위한,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집착과 질주의 당사자에서 일부 벗어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갖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보다 갖게 된 것을 감사하는 삶의 태도로의 전환이었다.

기억 속의 과거는 편집은 가능해도 수정은 불가능하다. 후회되는 과거의 실수는 인정하고, 내일 과거가 될 현재의 삶에서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는 것에 주력하기로 했다. 죽음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로 다음 순간에 올 수도 있기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졌다. 들에 핀 꽃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고 초겨울 햇살이 더없이 찬란하다. 손잡은 아내의 온기가 사무치게 올라온다. 세상에 감사하고 축복해야 할 많은 것들이 항상 같이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찾게 되었다.

그래도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섰다. 죽기 전에 혼자 남거나 홀로 두어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대한 집착으로 정의하고 난 후로는 홀가분함을 맛보게 되었다. 죽음을 다른 말로 ‘평온한 쉼(안식)’이라 했으니 ‘쉼’으로 받아들이면 먼저 쉴 것인지 뒤에 쉴 것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만 죽음을 앞에 두고 온전한 정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남아있는 사람에게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죽음을 나의 인생에서 당연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생긴 소원이었다.

죽음 이후의 가정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적 사고도 있겠지만, 이과적 사고의 한계에서 ‘나’의 핵심은 뇌세포의 시냅스 회로에 있을 것 같아 “이 우주 어디쯤 평행세계에 복제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흥미진진함도 있다. 이 또한 죽음 이후에 확인할 수 있으니 행성(지구)의 인력에 붙잡혀 짧은 순간을 경험하고 전 우주적으로 사고를 확장한다면 재미있겠다 싶기도 하다.

나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바뀌게 된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 경험에 불과하므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학습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좋은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받아들였으면 한다.

신언환 울산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 호텔조리제빵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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