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기획특집]고운 대나무 살, 시간으로 엮어 품격 높인다
[창간 15주년 기획특집]고운 대나무 살, 시간으로 엮어 품격 높인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3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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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수도 울산’과 ‘문화수도 전주’가 맞손 잡으면 ⑹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서신정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서신정.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서신정.

◇채상(彩箱)의 역사와 제작기술

‘채상장’(彩箱匠)이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다양한 색으로 물들여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로 고리 등을 엮는 기능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채상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호리 출토의 대나무 상자와 대고리에 옻칠을 입힌 채협총(彩?塚) 출토의 채화칠협(彩?漆?)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채상은 고대 이래로 궁중과 귀족계층 여성의 가구로 애용되었고, 귀하게 여겨졌던 고급공예품의 하나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사한 배색과 정교한 제작기술 덕분에 공예적 성가도 높았던 채상은, 목재가구가 일반화된 이후에도 혼수품 등 특수용도로 전용되어 지속적으로 유행했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 사대부뿐만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유행했으며 주로 옷, 장신구, 침선구, 귀중품 등을 담는 용기로 사용됐다.

덴마크 가구 프리츠 한센의 설립 150주년을 기념해 채상을 입힌 테이블.
덴마크 가구 프리츠 한센의 설립 150주년을 기념해 채상을 입힌 테이블.

채상의 제작기술은 대나무 껍질을 균등하게 떠내는 데에서 시작된다. 대나무 껍질을 입으로 물어 얇게 떠낸 다음, 떠낸 대나무 껍질을 물에 불린 후 그것을 무릎에 대고 일일이 다듬어 정리한다. 염색을 하고 다시 1∼5가닥씩 엇갈려 가며 엮는다. 종잇장처럼 곱게 다스려진 대오리에 잇꽃(赤色), 치자(黃色), 쪽(藍色), 갈매(黑色) 등으로 고르게 염색한다. 모서리와 테두리에 남색이나 검정색 등 바탕무늬와 어울리는 비단으로 감싸면 완성된다.

김승우가 만든 채상 클러치와 가방.
김승우가 만든 채상 클러치와 가방.

 

채상의 무늬는 완자, 수복강녕, 십자, 번개, 줄무늬 등 주로 길복(吉福)을 추구하는 길상적(吉祥的)인 무늬다. 이외에도 문양은 이방연속 또는 사방연속 등 반복문양이 기본적이나, 卍, 壽福康寧(수복강녕) 등의 문자, 그리고 十자, 뇌문, 줄무늬 등 주로 길상적 상징성을 지닌 문양이 조화있는 색조와 더불어 다채롭게 전개된다. 일반적인 고리가 튼튼한 목재가구의 등장으로 차차 소멸했던 반면, 채상은 고유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폭넓게 저변화되고 있다.

서신정이 개발한 채상 문양.
서신정이 개발한 채상 문양.

◇채상은 민중예술의 극치

채상은 민중예술의 극치다. 대나무 제품을 만드는 일은 매우 힘들고, ‘죽(竹)일을 하는 사람은 죽(粥)밖에 먹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득 또한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죽전(竹田)을 크게 가꾸어 재료를 비싼 값으로 팔아서 소득을 챙기는 일이 훨씬 손쉬운 일이었다. 옹기장이나 버들고리를 짜는 유기장처럼 천민집단으로 멸시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죽세공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결코 전답이 있어 농사를 짓는 일반 농민과 동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죽세공을 하는 장인들은 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왔고, 죽세공예 인구의 저변을 확대해 왔다. 우수한 수공기술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한 빈한한 민중들의 손끝에서 예술성이 뛰어난 채상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서신정의 채상 작품.
서신정의 채상 작품.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서신정

채상장은 주로 태극문양, 만자무늬 같은 대표적인 10여 가지 문양을 사용해왔는데 서신정 장인은 문헌을 공부해가며 50여 가지 문양을 복원 및 개발했다. 채상장은 이러한 문양들의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도안이 아니라 간단한 설명이었기에 어림잡아 해보며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근대 이후 화학염료로 대오리를 염색하던 것을 천연염색으로 바꾸어 채상 빛깔의 아름다움을 한층 끌어올리기도 했다.

처음 10년간은 매일 밤 1~2시까지 연습하다 잠들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심지어 일을 위해 “시집을 가더라도 가까운 데 아니면 못 간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온 정신을 쏟은 것은 재미가 있어서였다. 자신의 미감과 안목에 확신이 있었고, 응용력도 뛰어났다. 그녀는 전통 채상기법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채상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핸드백이나 브로치, 피크닉 바구니와 도시락, 모빌, 심지어 벤치나 의자에도 채상을 입혔다. 서신정 국가무형문화재와 덴마크 프리츠 한센이 협업하여 테이블 PK65에 얇게 켠 대나무를 엮어 작품을 만들었다. 무형문화재와 현대 미술의 협업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채상의 문양들.
채상의 문양들.

고(故) 서한규, 서신정, 김승우는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서 흔치 않은 채상을 3대째 이어가는 집안이다. 서신정은 프리츠 한센 150주년 기념 전시 ‘영원한 아름다움’에서 테이블에 채상을 입혀 영역을 넓혔다. 서신정 채상장의 외아들인 김승우 이수자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전주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소목, 누비, 염색 등 다양한 공예를 접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채상을 컨셉으로 국립유산원 내의 공간을 꾸미는 일을 맡았다. 채상 인테리어와 함께 다른 공예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장르를 펼쳐내고 있다. 또한, 국립무형유산원 전승마루 2층 복도 끝에 있는 창틀에 채상 짜임을 고정시켰다.

채상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민족 고유의 공예품이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공예기술이기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힘든 일이어서 배우는 사람이 없는 점이 매우 안타깝지만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다. 힘들고 어려운 공정들을 기계화하여 노동력을 절감해낸다면 채상은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되고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될 수 있는 우수한 수공품인 것이다.

 

 

김동철 ㈜온고 대표이사,

前 한국전통문화전당 초대원장

 

 

 

 

 

소목 이수자 복종선과 채상 이수자 김승우의 협업 작품, 빛이 머무는 벽.
소목 이수자 복종선과 채상 이수자 김승우의 협업 작품, 빛이 머무는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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