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고 싶은 아이들
집 가고 싶은 아이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2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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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집에 꿀을 발라 놓은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집에 가고 싶어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 집에 가려고 애쓴다. ‘집 가고 싶다. 집 가고 싶다.’ 그렇게 말한다. ‘집에 가고 싶다’도 아니고 ‘집 가고 싶다’다. 집에 뭐 맛있는 게 있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란다. 그렇다면 집에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그런 것도 없다고 한다. 그냥 ‘집 가고’ 싶단다.

가끔 아이들이 조퇴하려고 찾아오는 날이 있다. 그 순간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선생님은 아이의 상태를 보고 진짜로 가야 하는지 파악하려 하고 아이는 온몸을 다해 자신이 아픈 것을 어필하려고 한다.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니 머리가 어지럽다고 한다. 잠깐 신경전이 오간다. 아이의 젖은 머리카락, 발그레한 얼굴을 보고 한참 동안 잘 뛰어다녔다는 것을 직감하고 물어본다.

“앞 시간 뭐였니?” “체육이었어요.” “체육 시간에 뭐 했는데? 축구 한 거 아니야?” “부딪혀서 그래요.” “체육 시간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자기가 휘두른 라켓에 부딪혀 머리가 어지럽단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진짜로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휘두른 라켓에 머리를 부딪히는 경우를 생각해봤지만 선뜻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세게 부딪혔냐고 물어보니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괜찮다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아이는 멋쩍은 듯 씨익 웃으면서 교실로 돌아간다.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에게 혹시 계속 어지러우면 다시 찾아오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고 집에서도 하루 이틀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이야기해둔다.

평소에 웬만해서는 조퇴 이야기를 하지 않던 아이가 굳은 표정으로 와서 아프다고 하면 진짜 아픈 것처럼 보인다. 빨리 병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집에 전화하면 아침부터 아팠다고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바로 집으로 보내면 된다.

상습적으로 조퇴하는 아이들이 제일 고민이다. 원래 몸이 약하거나 아픈 아이들은 학년 초에 파악이 되어 있어서 아프다고 하면 집에 연락한 뒤 귀가시키면 된다. 그게 아닌 경우가 문제다. 아이는 머리가 아프다고, 어지럽다고, 배가 아프다고 한다.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프거나 어지러운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는다. 아이만 아는 증상이다. 이럴 때 진짜 고민이 된다. ‘지금 진짜로 아픈 걸까? 보내줘야 할까? 아니면 꾀병이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해야 하나? 1~2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와보라고 할까?’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사실 아프다고 하면 보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지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고 싶다고 계속 보내주면 집에 가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우르르 집에 가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친구들이 가는 것을 보니 조금만 아파도 집에 가려고 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집에 잘 보내주는 선생님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그렇다고 아픈 아이들을 무조건 학교에 있으라고 할 수도 없다.

필자의 경우 일단 집에 전화를 먼저 해본다. 집에서부터 아팠다면 당연히 보내주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게 아닐 때는 보호자와 논의해봐야 한다. 필자가 판단하는 아이의 상태를 말해준다. 그리고 학생과 직접 이야기를 해보도록 한다. 사실 상습적으로 조퇴하는 아이들은 집에서도 가능하면 안 보내주면 좋겠다고는 경우도 있다. 조퇴해도 집에서 쉬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아픈 것 같은 아이들에게는 한두 시간 정도 있어 보라고 한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이 아니면 보호자와 통화 후에 학교 마치고 병원에 가보도록 지도한다.

사실 오늘도 한 아이가 배가 아파 조퇴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반에서 가장 많이 조퇴하는 아이다. 매운 음식을 먹어서 속이 좋지 않다고 한다. 평소 속이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어서 아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복도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아픈 건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일단 어머니에게 전화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한 시간 뒤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어머니가 어제 매운 음식을 먹어서 배가 아플 거라고 보내줘도 좋다고 해서 집으로 보냈다. 학교 마칠 때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더니 배가 아파서 누워있다고 했다. 진짜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작은 의심을 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학교에서는 이런 조퇴 전쟁이 이따금 벌어진다. 그런데 사실 필자도 가끔 ‘집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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