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먼 길을 함께 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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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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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김윤삼-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

‘그를 만난 것은 70년대 후반 아스팔트 열기가 한창이던 여름. 그도 나도 거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였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 직업인 그는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철근 노동자 삶도 잠시 접고 ‘땀의 대오’에 합류했다. 세월은 가고, 영영 혼자일 것 같던 그도 이제 제비 새끼 둘을 키우며 끼니를 위해 ‘새벽 공사장’으로 나선다. 아침이면 사라지고 없는 ‘마술쟁이’같은 아빠. 무거운 어깨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를 것이 분명한 세 살배기.

비정규직 아픈 삶은 여전히 뉴스 외곽에 버려져 있는 오늘 아침, 그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폭염에 건설 경기 부진에 일마저 끊겼다는 소식은 고사리손 ‘안렁!’보다 더 가슴이 미어졌다.’ <이기철 시편 묵상집, ‘사랑하니깐 울지 마라’(2013)’ 중 김기홍 시인 시, ‘출근’ 해설에서 인용.>

댐 건설 노동자였던 그가 아른거린다. 동지로 친구로 오랜 시간 함께한 그가 남긴 ‘안렁!’이 겹쳐서다. 2019년 이별 통보 없이 갔기에 더욱 아프다. ‘근로자’는 껍데기고 ‘노동자’가 진정인 삶을 살았던 한 사람 이력은 끊어짐 없이 연속된다는 사실을 비감(悲感)한 마음으로 다시 대한다.

김윤삼 시인 두 번째 시집, ‘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는 현장시(現場詩)다. 그를 일으켜 세운 이른바 ‘삶의 현장’이어서. 첫 시집, ‘고통도 자라니 꽃이 되더라’에서 설익었던 문장(文章)은 단단히 벼르고 별러 ‘연장’으로 만들어 들고 나타났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로 5년, 노동조합 현장 조직활동가로 30년째인 ‘정규직 시인’인 그. 그가 목격한 삶 그늘에서 발견한 이 시편들은 당연 ‘붉은색’이다. 익숙한 단어들이 무시로 튀어나온다. 접하는 뉴스는 간접 경험이어서 언제나 안타까움이 버무려져 실감이 더디건만 시인이 접수한 맨바닥은 날 것이 주는 생생한 충격이 있다. 서정(抒情)을 수의(壽衣)처럼 입혀두었다.

해고, 분신, 쇳밥, 술잔, 면회, 출옥, 밥, 농성 등 ‘노동 투사(鬪士)’들이 던진 우리 시대를 그대로 옮겨온 뚫고 나가는 투사(透寫).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그 사이 여정(旅程)을 담았다는 시편은 시들지 않았고 싱싱하고 생생하다. 본인 말마따나 ‘시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지만 암울한 ‘미래’도 슬쩍 건드린다. 왜? 그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니깐.

‘모서리만 남고 낡은 것들/ 말할 줄 만 아는 노비들은/ 반드시 싸우는 척하다가 사라집니다’<시, ’구토’ 부분>는 변명은 그가 마저 할 일임을 확인한다.

잘 모르겠다. 시인은 충돌하는 사람인지 충동을 일으키는 촉진자인지. 시 ‘더미’에서 보여준 사유(事由) 혹은 사유(思惟)는 그가 앞으로 풀고 갈 숙제다. 자동차 충돌에서 겪을 상해(傷害)를 측정하는 모델 인형인 더미(dummy)를 보며 진저리치는 ‘트라우마’를 내내 지우지 못할 것은 뻔하다. 시인은 참 따뜻한 시선(視線)을 가진 사람이다. 하여 그가 만든 시선(詩選)은 두루 공평하되 한결같다. 시 한 편을 함께 나눈다.

‘꿈자리 사납다고 출근하는 김 씨에게 소금을 뿌립니다// 새벽밥 먹고 출근하지 마라는 아내의 말,/ 당긴 그물이 빈 바다라고/ 뱃머리를 뭍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야위어 가는 등을 먹고 쑥쑥 자라는 아이와/ 익어가는 아내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도시락 뚜껑을 여니/ 붉은 강낭콩 하트는/ 사랑할 시간을 남겨두겠다며/ 원을 그리는 꽃무릇이 되었습니다’. <김윤삼 시, ‘꽃무릇 핀 날’ 전부>

전진하는 현장 시인에게 한 가지만 부탁한다. 글은 정신도 중요하지만 정수리에서 마음으로 가는 따뜻함이 필요하다. 증명하려고만 하지 말고 화해하고 포옹하듯 글을 서둘러주길 바란다. 노동이란 아주 정직한 법이어서 ‘하루’를 견디는 일은 ‘일생’을 끌고 가는 법이니깐. 그저 ‘그때’를 회상하며 주억거리는 글쓰기는 작가 임무가 아니다. 함께 가는 길에 관한 충혈(充血), 눈물, 핏빛 물든 노을을 선사해준 시인에게 박수 보낸다.

시집 말미(末尾)에 시편을 빛나게 한 역할을 해준 윤창영 시인과 채찍질을 해준 이인휘 소설가 글 나눔은 매우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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