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 국내 방영 40주년을 맞아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 국내 방영 40주년을 맞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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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질 무렵 친구들과 동네 한쪽 귀퉁이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같이 놀던 친구 하나가 그날 밤에 TV에서 첫 방영되는 만화영화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유일하게 TV편성표가 있었던 신문 받아보는 집이 많이 없었고, 컬러TV는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어서 그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번엔 느낌이 좀 달랐다. 제목이 <미래소년 코난>이었던 것. 그게 뭐 어떻다고요? 아니 <로봇태권V>의 훈이도 아니고, <은하철도999>의 철이도 아니고, <마징가Z>의 쇠돌이도 아니고 ‘미래소년 코난’이라잖아요. 이전까지 알고 지낸 주인공 이름에서 한참 더 세련된 ‘코난’이 대체 뭘 하고 돌아 다니길래 과거소년도 아니고, 현재소녀도 아닌 ‘미래소년’이냐는 거죠.

해서 그날 밤, 난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냉큼 챙겨먹고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컬러TV 앞에 일찌감치 앉아서 코난을 기다렸다. 그리고 만나게 된 코난. 하, 그랬다. 그건 차라리 혁명이었다. 이전까진 본 적 없는 세련되고 친근감 좔좔 흐르는 그림체에 대규모 전쟁으로 5개 대륙이 모두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충격적인 스토리, 그 속에서 신인류로 태어나 괴력을 지닌 슈퍼소년 코난까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건 그 전까지 만화영화를 통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웃음’이었다.

사실 그 시절, 내 또래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다 좋아했지만 그걸 보고 제대로 웃을 일은 잘 없었다. 고작해야 <로봇태권V>에 등장하는 깡통로봇 철이 정도였는데 그래봤자 재롱떠는 수준. 허나 <미래소년 코난>은 달랐다. 특히 다이스 선장과 포비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진짜 빵빵 터졌다. 가을도 끝나 가는데 한번 짚어 드릴까요? 코난과 포비가 파라쿠다호에서 볼기 맞는 장면, 30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삼각탑에서 코난이 라나를 앉고 뛰어내린 뒤 그 충격에 쩍벌남이 되어 걷는 장면, 파라쿠다호 선실에 갇힌 라나와 몰래 이야기를 나누던 포비가 둥근 창틀에 끼이는 장면, 빵꾸 난 다이스 선장의 양말과 궁뎅이 등등. 솔직히 지금 봐도 웬만한 코미디 프로를 능가할 정도다. 그 찐웃음으로 인해 <미래소년 코난>은 당시 우리들에게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고, 멋들어진 주제곡과 함께 아예 ‘어린 시절’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그랬다. 그 시절 ‘푸른 바다 저 멀리~’로 시작되는 <미래소년 코난>의 주제곡은 영호남을 불문하고 전국 곳곳에서 가을운동회 때마다 단골 응원가로 쓰였다. 또 청군이든 백군이든 같은 편 친구들과 떼창을 하다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 부분에선 장난기가 발동해 너나할 것 없이 ‘대지’를 ‘돼지’로 바꿔 부르기도 했을 것. 딱 걸렸죠? 후후.

이랬던 <미래소년 코난>이 올해로 국내에서 방영된 지 딱 40주년이 됐다. 그러니까 오래 전 구슬치기를 하다 친구로부터 <미래소년 코난>의 첫 방영 소식을 접한 날이 1982년 10월 8일이었던 것. 40년의 세월이 이렇게나 후딱 지나가 버리다니. 하긴, 억겁(億劫)의 시간이라도 지나고 나면 다 찰나(刹那)가 되는 게 세상의 이치. 과거는 그렇게 압축기 같은 거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 속에서 현재의 행복과 고통은 과거라는 압축기를 거치면서 결국 ‘추억’이라는 보석으로 세공이 된다. 내게 <미래소년 코난>이 그렇다. 수없이 많은 현재들이 과거라는 압축기를 거쳐 갔지만 내 어린 시절의 보석은 단연 ‘코난’이다. 하긴, 어디 나만 그럴까.

코난, 라나, 포비, 할아버지, 라오 박사, 다이스 선장, 파라쿠다호, 덩그라스, 몬스키, 레프카, 오로, 홀로 남은 섬, 인더스트리아, 그리고 하이하버. 그래, ‘하이하버’였다. <미래소년 코난>에선 하이하버가 아닌 곳의 삶은 모조리 팍팍하고 기계적이다. 5개의 대륙이 모조리 가라앉은 뒤에도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하이하버라는 섬에서 농사를 지어가며 따뜻하고 정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이 만화영화를 다시 보면 하이하버가 유독 크게 보인다. 언제부턴가 쫓기듯 살다보니 어느 덧 자신의 삶도 하이하버와는 많이 멀어졌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 그렇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하이하버를 떠나 인더스트리아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게 아닐는지. 이젠 다들 라나를 구하기 위해 높은 삼각탑 좁은 난간에서 달랑 발가락힘 하나로 버티던 코난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겠지. 성공을 했든 안 했든, 돈이 많든 적든. 어른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어릴 땐 크리스마스만 다가와도 그냥 들뜨고 신났는데 말이지.

해서 이 글을 82년 10월 8일 그날 저녁에 나와 같이 TV 앞에서 코난을 처음 만났던 내 또래 친구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그들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이런 말도 건네고 싶다. 설령 지금 있는 곳이 기계적이고 삭막한 ‘인더스트리아’더라도 우리 어딘가에 있을 ‘하이하버’를 잊고 살진 말자고. 1982년 10월 8일 국내 첫 방영. 26부작.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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