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설벽의 알펜루트
거대한 설벽의 알펜루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14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라마다 경치가 아름다운 고산에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인다. 울산에 ‘영남알프스’가 있듯이 일본에도 알프스가 있다. 5월에 순백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일본 북알프스의 알펜루트에 가고 싶었다. 추천을 많이 했지만 정작 나는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미루곤 했다. 그러다 어느 해 5월 일본과 한국의 연휴가 같은 시점에 나고야에 있는 아들에게 가자고 졸라댔다. 일본 사람들도 가 본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일본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일본 알프스의 다테야마를 관통하는 대단한 산악 관광 코스다. 약 90km의 루트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자연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한시적 기간만 운영되는 설벽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대개 12월에서 4월까지는 폐쇄 기간이다.

최대 성수기라 코스를 반대로 잡아, 나고야에서 시나노오마치로 갔다. 기차를 4시 30분이나 타고 오마치역에 내리니 가랑비가 오고 있었다. 버스로 오오기사와 가는 길에는 날씨가 좋고 전원적인 시골 경치가 보였다. 곰배령처럼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었고 보라색 아카시아꽃이 인상적이었다. 눈이 녹아 계곡물은 세차게 흐르고 멀리 설산이 보이는 스위스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쿠로베 댐 티켓 줄이 엄청나게 길어 기다리니 춥기도 했다. 드디어 전기버스를 타고 구로베 댐으로 갔다. 도착하니 어마어마하게 큰 댐에 잠긴 산과 계곡이 굽이굽이 있었다. 산은 거의 눈에 덮인 채 옥색 물 위에 끝없이 떠 있었다. 근데 내려오는 사람들이 폭설로 길이 막혀 더 못 간다고 했다. 무로토로 갈 수 없어 도로 내려가야 한다나.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다시 내려가란 말인가?

쿠로베에서 가는 다테야마 정상 부분이 언제 뚫릴지 몰라 계속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반대편에 있는 도야마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 횡단 후 도착 지점이라 도야마에 호텔 예약을 해 놓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래서 더 잊히지 않는 여행이 되었다. 포기로 얻은 것들이 내 기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골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탔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70년대 농촌 풍경을 봤다. 나무로 된 긴 기둥에 슬레이트를 얹은 낡은 간이역에서 타는 시골 어르신들. 예전에 청량리행 열차를 타다 보면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 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역 주변에는 벼가 자라는 논과 계곡들로 집들이 안 보였다. 모처럼 한적한 곳에 쉬어가는 편안한 기분을 가지게 되었다.

밤늦게 도야마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무료로 주는 소바와 온천이 있어 더 위로가 되었다. 아들이 우겨서 도야마 명물인 흰새우 튀김 덮밥을 1시간가량 기다려서 먹었다. 나는 주로 보는 것과 체험을 좋아하지만 아들은 맛집 탐방을 선호했다. 그래서 같이 여행하면서 부딪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텐테츠도야마 역에서 다테야마 역으로 갔다. 다테야마 역에는 각국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3시간을 기다리면서 더워서 박물관과 근처를 돌며 녹차 아이스크림을 물고 다녔다. 시원한 바람에 그늘은 선선하여 가을 같은 느낌이지만 햇살은 엄청 뜨거웠다.

대합실에서 실시간 상황을 보여주는데 현재 무로도는 2.9도에 2천450m라고 했다. 이렇게 더운데 고산 지대이긴 하나 보다. 일본 최초로 2단으로 설계된 “신호타카 로프웨이”라는 유일한 2층 케이블카를 탔다. 비조다이라 삼나무 숲길을 지나 고원 버스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데 설경이 보이더니 이내 완전 설국이었다.

도로에도 설벽이 높아 5월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였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무로도 역에 도착했다. 유럽의 알프스와 다른 느낌이었다. 스키 타는 사람, 등산하는 사람, 여름옷을 입고 떠는 동남아 관광객.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했다. 사진으로 보던 그 설벽! 내 키의 몇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부러울 정도였다. 힘든 마음이 다 녹아내렸다.

김윤경 작가, 여행큐레이터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