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인구·청년·지역 이해 통한 현실정책 필요한 때”
[창간특집]“인구·청년·지역 이해 통한 현실정책 필요한 때”
  • 김원경
  • 승인 2022.11.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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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에 갇힌 울산… 해법은?
울산 울주군 삼남읍에 5자녀를 키우고 있는 29살 동갑내기 부부 이재율(29), 고태은(29·여) 씨 가족사진.
울산 울주군 삼남읍에 5자녀를 키우고 있는 29살 동갑내기 부부 이재율(29), 고태은(29·여) 씨 가족사진.

1998년 1.66

         …

2019년 1.08

2020년 0.98

2021년 0.94

울산광역시 승격(1997년 7월 15일) 이듬해부터 지난해의 울산 합계 출산율(여성 한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 추이다. 출산율 0명을 향해 달려가는 이 숫자 행렬 속에 울산의 미래가 보이는가? 1998년 1만6천697명이었던 울산의 출생아 수가 지난해에 6천127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울산을 이끌어가야 할 신규 사병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합계 출산율이 0명대를 이어간다면 30년 뒤 출생인구 반토막은 불 보듯 뻔하다. 광역시 타이틀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 보다 인구정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초저출산 시대, 창간 15주년을 맞은 본보는 ‘초저출산의 덫’을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울산에서 다자녀를 키우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다둥이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고민해 봤다. < 편집자 주 >

-임대주택 가구 수에 맞춰 면적 다양화 해야… 경로당처럼 동네마다 돌봄 공간 필요

중구 반구동의 2억원대 50평 복층빌라. 이기범(39) 장수경(44·여)씨와 5명의 자녀, 그리고 친정아버지가 함께 사는 보금자리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부부는 4년 전 넷째를 임신하면서 친정아버지의 육아 지원사격을 받게 됐다.

남구 삼산에서 24평대 아파트 자가로 시작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30평대 전세로 옮겼다가 넷째 임신을 하면서 더 큰 평수가 필요해 시세 대비 저렴한 빌라로 옮겼다는 이들 부부는 자녀 수가 늘수록 무엇보다 집 걱정이 가장 크다.

장수경 씨는 “임대주택이나 민간 공동주택의 경우 다자녀 가정에 우선순위가 주어져도 가구원 수에 맞는 적정 평수가 없고, 아파트 청약도 넓은 평수는 해당 안 되다 보니 와닿지 않는 정책”이라며 “주택확보에 어려움 겪는 다자녀 가정을 위해 임대주택 평수를 40~50평까지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가족 수에 비해 수입이 부족하지만 은행 주택담보대출이나 각종 바우처 지원 등은 가족 수를 고려하지 않고 공무원 부부합산 소득만 따지다 보니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지자체나 정부의 전반적인 출산 대책도 셋째 자녀 이후로는 다 똑같다. 5자녀 정도면 인센티브가 배가되고 나라에서 거저 키워주는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실질적인 다자녀 혜택은 월 5만원 채 되지 않는 전기세·수도세 할인이 다다”고 토로했다.

또 무엇보다 맞벌이가정에 가장 큰 부담은 아이돌봄. 아직 한창 엄마 손길이 필요한 넷째(4)·다섯째(2) 딸을 위해 지자체 아이돌봄서비스 이용을 고민했지만 1대1이 원칙인 데다 2인 15% 할인을 받아도 월 30여만원의 비용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엄마들 사이에서는 어린이집 등·하원 전담 아이돌봄은 ‘대기하다 초등학교 간다’는 푸념이 있을 정도로 이용도 쉽지 않은 상황. 장 씨는 “지금은 생존이 문제라 애들 사교육은 시키지 않고 지자체 돌봄센터를 이용했는데 거주지를 옮기니 재이용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난 교사라 방학 때는 괜찮지만 일반 맞벌이가정에서 방학은 그야말로 비상”이라며 “동네마다 경로당이 있듯 타 도시의 마더센터처럼 울산에도 아이를 다 키워놓은 엄마들의 커뮤니티를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제시했다. “시와 지자체가 모든 인력을 충당해야 한단 생각 말고 발상을 전환해 육아공동체 품앗이 하듯 엄마들이 주체가 돼 돌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바랐다.

-중소기업 여전히 육아휴직 쓰기 어려워… 경단녀 사회적 인식 개선돼야

울주군 삼남읍에 5자녀를 키우고 있는 29살 동갑내기 부부 이재율(29), 고태은(29·여) 씨 역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집 문제를 꼽았다.

일곱 가족이 지내기 너무 비좁아 LH 임대아파트는 엄두도 못 낸다. 저축보다 지출이 더 많은 시기다 보니 월세를 벗어나기도 쉽지 않은데, 여기에 날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양육비 부담에 마음이 늘 편치 않다.

20kg 쌀은 한 달이면 뚝딱이고, 마트에서 50만원 어치 장을 봐도 보름을 넘기지 못한다.

최근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스포츠바우처사업을 통해 첫째와 둘째가 무료 스포츠강좌를 지원받았지만 초등학생인 첫째가 태권도 선수부로 들어가면서 대회출전이 잦아지다 보니 경기와 훈련비 등 사교육비만 2~3배 늘었다.

고태은 씨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남편은 잔업까지 도맡아 주말 없이 일한다. 때문에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2주에 한번 일요일뿐.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선 여전히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쓰기가 눈치 보여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2년 전 울산으로 오면서 맞벌이를 위해 취업을 준비했지만 아이가 있고 경력단절을 문제 삼아 면접에서 떨어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밖에 할 게 없었다”며 “서울에서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부분이 걸림돌이 됐다. 서울 지방간 인식 차이를 크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고 씨는 또 “여자로서 경력을 쌓아 좋은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친정, 시댁 도움을 못 받거나 특히 자녀가 아프면 정말 난감하다.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촘촘한 정책이 세워지고, 작은 기업에서도 출산·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가 된다면 결혼·출산율은 덩달아 늘 것”이라며 “‘경력단절’을 ‘경력보유’로 보는 인식 전환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 중구 다둥이 가정인 이기범(39) 장수경(44·여)씨와 5명의 자녀, 그리고 친정아버지. 최지원 기자
울산 중구 다둥이 가정인 이기범(39) 장수경(44·여)씨와 5명의 자녀, 그리고 친정아버지. 최지원 기자

 

-단발성 정책보다 고용안정으로 혼인 장려하고, 첫째부터 육아 돌봄 부담 국가가 덜어줘야

지난 10년간(2012~2021년) 울산시가 저출산 극복에 쏟아부은 예산은 총 2천655억여원이다.

이는 울산시 출산지원금과 아동수당, 장애인 출산지원금 및 여성장애인 출산비용 지원예산 총합으로 여기에 5개 구·군의 출산지원금까지 더하면 3천억원이 넘는다.

매년 300억원이 투입되고 있지만 울산의 출생아 수는 2012년 1만2천여명에서 지난해는 6천127명으로 반토막 났다. 덩달아 합계 출산율은 같은 기간 1.48명에서 0.94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금성, 단발성 정책보다는 지역과 사람, 청년들의 생애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보다 현실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정민자 울산대학교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 근본 원인은 심각한 만혼현상과도 맞물린다. 금전적인 문제, 고용불안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비혼·비자녀주의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며 “결혼연령을 1년만 낮춰도 출산율이 0.62%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젊은 층이 집문제 등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도록 월세형 임대주택을 확대하는 등 친결혼 문화를 만들고, 출산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해 누구에게나 열린 돌봄센터가 곳곳에 세워져야 한다. 결혼, 출산 양육정책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은 “이제 현금성 지원으로 출산율 높일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생애과정이다. 지역 청년들의 취업 시기와 고용환경 지표가 어떤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은 최근 경기가 살아나며 출산율이 반등했지만, 우리는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낮다. 질 좋은 청년 일자리로 지역 청년들이 떠나지 않도록 기업 청년세대 선순환할 수 있는 경제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출산과 인구에 대한 지역 정책은 개별적으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인구와 사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지차제의 정책이 종합적으로 결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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