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예찬
누룽지 예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0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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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족들을 위해 누룽지를 만드는 것이다. 늦잠을 자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아침 식사를 건너뛰기 쉬운 식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따스하고 애틋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누룽지를 만드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노릇노릇 고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불 조절도 중요하지만 오로지 그 일에만 집중해야만 한다. 자칫 다른 일도 같이하려는 욕심을 냈다가는 순간 새까맣게 타기 일쑤다.

큰딸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지원이 어머님. 그동안 누룽지 잘 먹었습니다. 지원이가 간식으로 가져온 누룽지를 저도 얻어먹었답니다.”

누룽지를 만들어 쪽지편지와 함께 가방에 자주 넣어주곤 했었는데, 유난히 잔정이 많은 아이라서 친구들과 선생님께도 누룽지를 나눠주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누룽지를 나눠주며 마음 충만했을 모습을 떠올리면 나 또한 마음이 푸근해진다.

작년에 시어머님과 어머니가 코로나19에 걸려 입맛을 잃고 힘들어하셨다. 가서 간호도 못 해 드리는 상황이라서 너무나 걱정되고 죄송한 마음에 음식을 만들어 택배로 보냈었는데, 그중에 내가 만든 누룽지로 숭늉을 끓여서 먹었던 것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평소에도 식사 후 마시는 구수한 숭늉은 소화도 잘 되고 그 어떤 차보다 부작용 없는 좋은 음료 구실을 한다. 어쩌면 누룽지는 우리 조상님들이 지혜로 만들어 물려준 가장 한국적인 최고의 건강식품인지도 모른다.

조선 시대엔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먼 길을 갈 때도 누룽지를 들고 가면서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또 성종실록에는 인수대비가 오랜 병고를 무사히 이겨낸 것도 숭늉의 힘이 컸다고 전해진다. 궁에서 숭늉 잘 끓이는 시녀를 차출하여 인수대비가 먹을 숭늉을 끓이게 했는데, 병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여 상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그럼 누룽지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자세히 알아보자.

첫째, 훌륭한 해독제 역할을 한다. 누룽지는 우리 몸에 쌓여 있는 중금속과 독소를 없애준다. 산성식품인 밥이 반쯤 숯이 된 상태인 누룽지로 변하면 알칼리성이 된다. 이때 생기는 탄소 성분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또 간에 쌓인 독소를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간 기능을 좋게 한다. 그리고 몸속에 쌓인 중금속과 기름때, 농약 성분 등 인공 합성 유독 물질들을 분해하고 배출해서 뇌 기능과 면역력을 높이는 중요한 일을 한다.

둘째,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누룽지는 칼로리가 낮은 데다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고 지방분해를 촉진해 체중을 조절해준다.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를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영양부족을 막아준다.

셋째, 두뇌 발달에 좋다. 누룽지를 과자처럼 씹어 먹으면 자연스럽게 턱 운동이 되어 뇌세포를 자극해서 기억력,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

넷째,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음주 후 숭늉을 먹으면 소화력을 높여주고 알코올 해독작용을 돕는다. 다섯째, 맵고 짠 반찬이 많은 우리나라 음식을 먹은 후엔 산성 농도가 높아지는데, 이때 포도당이 녹아있는 숭늉을 먹으면 산성을 알칼리성으로 중화시켜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준다.

평소에 누룽지를 즐겨 먹는 것은 건전한 쌀 소비를 늘리고 건강도 지키는 일석이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즈음 가슴 시린 누군가에게 따뜻한 정이 담긴 숭늉 한 그릇 대접해 주고 싶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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