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아담’- Black or White? Black and White!
영화 ‘블랙 아담’- Black or White? Black and White!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0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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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슈퍼히어로 무비에서 2008년 개봉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축복이자 저주였다. 경쟁사로 <어벤져스>시리즈의 마블 슈퍼히어로 무비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 어떤 작품도 <다크 나이트>를 능가할 작품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을 정도니 DC로선 분명 축복인 셈이다. 참고로 개인적으로도 슈퍼히어로 무비 통틀어 <다크 나이트>는 여전히 원탑이다. 벗어날 수가 없어. 젠장.

허나 <다크 나이트>는 이후 만들어진 DC 슈퍼히어로 무비의 물길을 크게 돌려버렸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저주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면 많은 이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가볍게 즐기는 슈퍼히어로 무비에 심오한 철학을 입혀 흥행과 작품성 모두를 잡은 <다크 나이트>에 DC 스스로도 반해버린 것. 가뜩이나 다크함(어둠)이 전매 특허였던 DC는 “이거다!” 싶었을 테고 이후 만들어진 작품들에 종종 철학을 입히게 되면서 잔뜩 무거워지고 말았다. 뭐든 무거워지면 흥은 떨어지기 마련. 마블이 <어벤져스>시리즈로 댄스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는 동안 DC는 그렇게 사색에 잠겨 산책을 하고 다녔던 거다.

그건 <저스티스 리그>시리즈의 출발점인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13년작 <맨 오브 스틸>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원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제목도 그가 제작해 2006년에 이미 개봉했던 <슈퍼맨 리턴즈>와 같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성공으로 제작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만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듯 배트맨의 별명인 ‘Dark Knight(어둠의 기사)’를 따라 슈퍼맨의 별명인 ‘Man Of Steel(강철의 사나이)’로 제목이 바뀌면서 감독도 브라이언 싱어에서 잭 스나이더로 전격 교체됐다. 또 <다크 나이트>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아울러 영화의 분위기도 극도로 어두워졌는데 그건 2006년 개봉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슈퍼맨 리턴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슈퍼맨 리턴즈>는 지금의 마블 슈퍼히어로 무비와 분위기가 거의 같다. 밝고 가볍다. 반면 <맨 오브 스틸>은 주인공 슈퍼맨(헨리 카빌)을 단순 슈퍼히어로가 아닌 인류의 구원자로서 신격화한 뒤 신(神)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들로 가득 채워버린다. 헌데 시점이 안 좋았다. 직전 해(2012년) 마블이 <어벤져스> 1편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뒤여서 관객들은 이미 밝고 경쾌한 마블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결국 <다크 나이트>의 저주에 갇힌 DC는 <저스티스 리그>시리즈의 출발부터 삐걱대면서 마블의 <어벤져스>시리즈에 계속 밀리게 됐다.

그렇다면 DC는 왜 <다크 나이트>의 저주에 갇힐 수밖에 없었을까? 물론 후발 주자로서 마블의 <어벤져스>시리즈와의 차별화를 위함도 있었겠지만 내 생각엔 ‘어둠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DC의 그런 애정을 이번 영화 <블랙 아담>을 통해 아주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크 나이트>에서 처음으로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을 마주하게 된 악당 조커(히스 레저). 그는 “왜 나를 죽이려 하지?”라는 배트맨의 질문에 어이없다는 듯 한껏 웃어 재낀 뒤 이렇게 말한다.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어. 내가 너 없이 뭘 하겠어? 넌 나를 완성시켜.”

아니 어떻게 영웅이 악당을 완성시킬 수가 있지? 선(善)과 악(惡)은 서로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안달인데 말이지.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빛과 어둠은 다르다. 빛은 어둠이 있어 더욱 밝아 보이고, 어둠 역시 빛이 있어 그 존재가 더 부각되기 마련이다. 밤하늘을 떠올려 보시길. 그렇게 배트맨이라는 빛이 있어 조커라는 어둠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거다. 결국 어둠에 대한 DC의 깊은 애정은 바로 조커의 이 대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데 비록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악은 결코 선과 친해질 수 없지만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에서는 어둠과 빛은 서로 친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Black(어둠) or White(빛)’가 아니라 ‘Black(어둠) and White(빛)’인 셈. 바로 ‘공존’이다. <블랙 아담>에서 악당인 블랙 아담(드웨인 존슨)이 더 나쁜 놈인 사박(이스마엘 그래거)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 아이시스(사라 샤이)의 아들 아톰(노아 센티네오)을 구해 준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고 블랙 아담이 선(善)은 아니잖아. 그 순간, 그는 그냥 한 줄기 ‘빛’이 됐던 거다.

에덴 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이브는 결국 뱀(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는 바람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다. 헌데 같은 인간으로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만약 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고 그들이 계속 에덴 동산에 남아 있었다면 평생 한 점 부끄럼 없이 착하게만 살았을까? 에이, 설마. 재미없게시리. 2022년 10월 19일 개봉. 러닝 타임 12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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